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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는 말이지 - 팀장 알바 @ work
나의 알바 인생은 내 나이 열셋에 시작되었다. 천오백 원도 안 되는 시급을 받고 동네 아파트에 전단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는 간식을 사 먹을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알바 인생을 꿈꾼다. 생계를 위한 기본 욕구 충족과 약간의 여유를 위함으로 이유는 바뀌었지만 생각해 보니 사실 변한 것은 돈의 총량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내게 주어진 팀장이란 직책 뒤에 알바라는 마음가짐을 새겨 넣었다. 이곳이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이다.
나는 일찌감치 온갖 알바를 하며 다양한 조직의 말단 역할을 하며 자랐다. 십 년 넘은 아르바이트생의 삶은 여러 가지 배움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 않으면 비록 그 권리가 법으로 정해진 거라도 그다지 존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세 차례 얼마 되지도 않는 급여를 깎이고, 떼이고 나서야 이게 울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조직의 영업 활동을 위해 일한 자에게 업무 중 일어난 손실 혹은 기업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돈을 떼먹는 것은 나쁘다. 그렇지만 억울하다고 뒤에서 말만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알바의 삶에서 법은 늘 사장님의 이해관계보다 멀리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학생처럼 근로 기준법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하여 최저 임금보다 적은 돈을 받고도 일했으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나 업무 중 사고로 파손된 중고 물품들의 정가 보상 요구를 받아들이며 살았다. 굳이 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단지 노동력과 시간을 돈과 바꾸기로 약속하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종종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약속에서 억울해했을 뿐 제대로 대우받거나 보상받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물론 늘 사장님만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어떤 알바직에서는 개인적 사유로 갑작스레 퇴직 통보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렇게 세상의 사장님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은 서로에 대한 경험적 불신을 쌓아 갔으리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제 더는 미룰 곳이 없어 세상으로 나와야만 했을 때, 국내외에서 서른 개가 넘는 알바와 비정규직을 경험한 상태였다. 거기에 여럿의 NGO 단체에서 봉사로 했던 활동들까지 합친다면 내가 경험한 조직은 족히 마흔 개가 훌쩍 넘었다. 추가로 그 무렵 내가 여행으로 가 본 나라는 스무 개 정도였고, 해외에서 체류한 기간은 3년 가까이 되었다. 머리가 클 만큼 커 나름의 확고한 생각이 생겼다. 조직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하며 불합리를 참아 내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기업에 제대로 된 입사 지원서 한 번 제출해 보지 않은 채 사업 계획서를 쓰고 창업 센터에 입주했다. 그때 조금 더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도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졸업 후 취업이라는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걷는 그 길을 걷지 않을 거라면 창업이 유일한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팔 년이 지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만약 유명한 사업가가 되었다면 성공한 사람이라 불렸을 것이다.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성실한 사람이라 평가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일찌감치 대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긴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 후에는 합병, 폐업, 지분 포기 등 지난했던 눈물 쏟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제 남들에게 이번 생의 나의 창업은 망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그 일들을 흘려보냈다. 창업 전까지 알바라는 준 취업만 해봤으니 내 눈엔 직장인의 어려움과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부당한 대우만 눈에 보였더랬다. 막상 모든 의사 결정을 직접 해야 하는 작은 조직의 대표자가 되고 나니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건 타인에게 부림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 시절 나는 종종 자신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에 비유했다. 반지를 목에 걸고 운명의 산을 향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프로도의 여정처럼 끝과 방향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은 채 닥쳐오는 험난한 상황들을 견뎌 내야 했다. 목에 건 소명은 점점 무거워져 나를 짓누르고 잃어버리게 하는 것 같았다. 도움과 관심을 받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책임과 소명에 무게를 더했다. 나는 여전히 주변의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 대표들을 그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정부와 사회는 사람들에게 도와줄 테니 그 길을 걸어보라 권고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 길은 누구나 쉬이 걸을 수 있지 않을뿐더러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