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물다섯
나와 비, 레스피 이렇게 셋이서 맞는 조촐한 아침이다. 성당의 아침식사는 늘 바게트 빵과 차 혹은 커피이다(물어보니 알제리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는 듯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내일 오전 체크 아웃을 위해 분주하게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우리 방과 화장실을, 비는 1, 2층을 돌며 천장 높은 곳에 있는 거미줄 제거를 맡았다(신부님은 자신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키 큰 비에게 특별히 이 일을 부탁하고 가셨다). 사방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으므로 기차 탈 때 먼지 방지용으로 쓰는 마스크로 쓰고 청소에 임했다. 스키다 성당 저택에는 1층에 예배공간과 거실, 부엌, 세면실, 그리고 샤워실/화장실이 딸린 메인룸 하나와 2층에 방 4개 정도와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데 우리가 메인룸을 쓰고 있다. 첫날 신부님이 거기를 써도 된다고 하셔서 짐을 풀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방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안에 세면실이 있는 (절대적으로 말고 상대적으로)가장 좋은 방이었다. 전에 계시던 신부님이 쓰시던 방인데 파더 미셸은 그 방을 우리에게 내주고 우리가 머무는 동안 2층에서 묶으셨던 것 같다.
11시가 넘어서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비는 그저께 먹다 남은 닭을 발라서 토마토 페스트와 고춧가루를 넣고 빨간 닭죽을 끓였다. 나는 야채를 다듬고 샐러드와 후식을 준비했다. 1시가 다 되어서 아수르가 왔고, 넷이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접시가 아닌 밥그릇을 썼다. 어제에 이어 젓가락질이 화두에 올랐다. 대나무로 만든 나무젓가락으로 무언가를 집는 연습을 하는 레스피를 보며 말로만(이론적으로) 가이드를 해주고 실제 훌륭한 시범을 보이지 못하는 내가 한스러웠다(젓가락질 잘 못함). 점심을 먹고 만류했음에도 아수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딱 봐도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이 곳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3인 1조의 놀랄 만큼 체계화된 물 절약형 설거지 시스템을 익숙하게 구사했는데(한 명이 받아 놓은 물에서 세제로 그릇을 닦고 다른 한 명이 그다음 받아 놓은 물에서 그릇을 헹궈 엎어 놓으면 마지막 사람이 마른행주로 그릇의 물끼를 싹 닦아 자리에 집어넣음) 어느덧 그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체계를 무시하고 물을 펑펑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함에도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지 못하는 아수르의 설거지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파더 미셸이 보면 상처 받으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듦) 그의 노력은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만류하지 않은 채 그의 설거지 실력을 인정하고(비가 준 조언)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행주고 깨끗하게 닦기)을 다했다.
점심을 마쳤을 즈음, 사람들이 하나둘씩 방문했다. 안나바의 어제 우리가 갔었으나 들어가지 못한 세인트 어거스틴 대성당에서 수단 신부님 한 분이 오셨고, 어제 아침에 오셨던 지붕 고치는 알제리안 아저씨가 아내분과 함께 오셨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알제리안 전통음식으로 저녁을 준비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이 곳에 방문했던 지붕 고치는 알제리안 아저씨랑 신부님이(두 분이 친구임) 우리에게 알제리 전통음식을 먹이고자 마련한 자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스키다 근처에 사는 이곳에 종종 놀러 온다는 알제리안 기독교(가톨릭은 아니고 개신교인듯함) 신자(청년) 분도 한분 오셨다. 파더 미셸이 안 계신데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온 게 뭔가 신기했지만(모두가 손님), 각자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우리는 청소. 빨래 등을)하며 오후를 보냈다. 나는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전통 요리가 궁금해 지켜봤는데, 찜통에 들어간 닭(역시 여기도 닭이 만만한지 닭요리 하시는 분이 많다), 그리고 따로 고기와 야채 등이 삶아지고 있었고, 커다란 대야 한 가득 정사각형 모양의 얅은 파스타 면 같은 게 보였다. 이게 알제리 안 파스타냐고 물었더니 이 요리의 이름이 트리다라고 알려주셨는데, 나는 순간 사막 과일 디기다 생각이 났다.
저녁상에는 수단 신부님, 레스피, 그리고 콘스탄틴에서 돌아온 프루덴스, 나와 비, 알제리안 아저씨와 아주머니, 아수르와 딸, 그리고 또 다른 알제리 청년까지 손님만 10명이 둘러앉았는데, 트리다를 대야 한 가득 준비하신 아주머님은 정말이지 각 그릇마다 트리다를 산더미처럼 얹은 후 닭고기와 고기, 야채 구이를 올려주셔서 엄청 맛있지만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는 정도였다. 뭔가 다문화 대가족의 저녁식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나와 비, 아수르와 딸, 그리고 수단 신부님 이렇게 다섯은 아수르의 차를 타고 커다란 텐트가 있는 서커스장으로 향했다(우리끼리만 가서 미안함을 느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됨). 서커스는 이미 시작한 상태여서 처음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웬걸 아수르의 '나야 나, 나 몰라?'가 여기서도 통한 건지 잠시 후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하나의 세션이 끝나고 다른 세션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불 붙은 링을 뛰어넘은(텔레비전에서 많이 본) 사자 쇼를 보았는데, 사자가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뭔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 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영화 촬영을 콘셉트로 쇼를 했고, 하마와 커다란 들소도 나왔고, 아이언맨, 슈퍼맨, 배트맨도 나왔다 들어갔다(공중 그네타기를 어벤져스 컨셉으로 하는 것이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 내가 텔레비전에서 서커스라는 이름하에 많이 본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직접 본 서커스(중국 기예 서커스나 핀란드 창작 서커스, 한국의 광대놀이 등)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삼 (서커스 단원으로서) 저기 서있는 그들(동물들 포함)의 삶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일상은 어떨까? 공연이 끝난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서 공연을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밤늦게 도착한 집에서는 수단에서 오신 신부님, 탄자니아에서 온 프루덴스와 레시피, 알제리안 아주머니와 청년,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와 비가 둘러앉아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나누며 스키다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의 다른 삶의 경험을 궁금해했고, 나눴다고 생각한다. 나는 12시쯤 피곤에서 방으로 들어왔지만 비는 알제리안 청년의 열정으로 아주머니와 함께 새벽 2시까지 밖에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장시간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스킬업을 축하해 주었다. 아쉬움이 빛나는 스키다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나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추억하게 될까?
<표지 사진 : 사막 과일 디기다. 야자열매인데, 사막에서만 저렇게 먹을 수 있게 투명하게 변한다고 한다. 약간 반건 곶감 같은 맛이 남. 우리가 한번 먹고 감탄하는 것을 보더니 아수르가 안나바 다녀오는 길에 한 묶음 사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상태로 조금씩 익히며 투명해지면 하나씩 따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