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물넷
우리는 오늘 안나바(Annaba)에 간다. 어제 점심을 먹으며 아수르는 오늘이든 내일이든 안나바에 가고 싶다면 자기가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안나바는 스키다에서 동쪽으로 100Km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알제리에서 4번째로 큰 도시(알제, 오랑, 콘스탄틴 , 그리고 안나바임)로 튀니지 국경 근처에 있다. 우리는 사실 그다지 안나바에 대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스키다의 일상 같은 생활에 만족하고 있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우리를 데려가고 싶은 아수르의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파더 미셸도 안나바에 가면 알제리에 현존하는 유일하고 가장 큰 성당(다른 성당들은 대부분 알제리 독립 후 용도 변경되고, 현재는 우리가 머물렀던 곳 같은 목회자 저택 같은 곳만 남아 있는 듯함. 대부분 거기서 지역별 소규모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음)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약간의 소통의 두려움을 앉은 채, 아수르의 차에 올랐다.
우리에겐 높은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아수르의 유쾌함과 나의 눈치(?), 비의 젠틀함으로 원활한 여정을 시작했다. 아수르가 선택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는 작은 도시의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흥미롭게도 스키다에서 안나바 가는 길은 오랑에서 알제나 알제에서 콘스탄틴 가는 길보다 훨씬 푸릇푸릇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수르의 영어 단어와 불어, 그리고 아랍어가 섞인 이야기 속에서 그에 대해 썩 많은 것을 추측해 낼 수 있었는데, 이해한 바로는, 그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프랑스인을(파더 미셸 빼고) 싫어하고 한국인을 좋아한다. 안나바에서 공부를 하고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와서 프랑스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알제리인 프랑스인 간에 대우가 불공정하고 계급이 높은 프랑스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알제리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하고 일을 했었던 거 같은데 직급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함께 일하고, 밥 먹고, 게임을 즐기고 해서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 그가 묘사하는 한국은 내가 생각하는 한국 하고는 너무 다르지만(예를 들면, 한국의 캔음료는 특별히 작다거나 음료수를 시키면 얼음만 잔뜩 주고 음료는 조금만 준다거나 하수도 시스템이 매우 발달해 있어서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절대 홍수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는 등. 어느 쪽으로든 좀 과장된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너무 확신에 차 말을 하기 때문에(그에 비해 우리의 의사소통 수준은 매우 낮고)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유쾌하고 한국과 우리에 대해 대부분 매우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므로 굳이 그의 믿음을 깰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나바 가는 길, 점심으로 샐러드와 밥, 빵, 꼬치 등 한 가득 차려진 밥상을 받고(알아서 많이 시켜주심) 그제 점심 오징어 파스타 만찬에 이어 어제 점심 치킨 요리 재료까지(요리는 파더 미셸이 하셨고, 재료는 아수르가 사줌) 이틀 점심을 매우 잘 얻어먹었으므로 우리가 점심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계산하려는 순간 펄쩍 뛰며 물리치셨다. 계산을 끝내고는 아직까지 먹어 본 적 없는 엄청 큰 크기의 무화과 몇 개를 사서 손수 식당에 들려 씻어다 주셨는데, 나는 천상 남자 아저씨 같은 외모와 행동에 비해 종종 귀엽고 섬세한 구석을 가진 그가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나바에 도착해서 우리를 어딘가(아마도 성당에) 내려주고 볼 일을 볼 줄 알았던 그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금방 볼일을 보고 돌아오겠다고 하곤 어디론가 들어갔다. 안나바 외각이었던 거 같은데 차 주변을 돌다 길거리의 양 떼, 양의 먹이로 보이는 조금씩 나눠져 있는 건초 더미, 그리고 5층 건물의 테라스에서 밖을 보며 울고 있는 양을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다음 주 월요일이 이슬람의 주요 축제 중 하나(이드 알 아드하라고 하는 것 같았음)인데 집집마다 양을 잡아 희생제를 지낸다고 한다(성경의 아브라함이 아들을 대신해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비롯된 듯함). 오가며 보았던 수많은 양들이 곧 최후의 맞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년 이 축제에 희생되는 동물수가 이슬람국가들을 통틀어 백만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안나바 시내를 거쳐, 해변, 그리고 세인트 어거스틴 성당에 들렸는데 사실 해변은 스키다의 비치가 더 놀기도 보기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나바 시내에서 동쪽 외각으로 나가면 튀니지까지 이어지는 50km 정도의 비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4세기에 활동했다는 알제리에서 가장 유명한 신부님인 세인트 어거스틴의 이름을 딴 세인트 어거스틴 성당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5분쯤으로 밖에서 살짝 건물을 감상하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안에서 사람이 나오더니 문 닫을 시간이라며 얄짤없이 문을 닫고 가 버렸다. 앞의 표지를 보니 2시부터 4시 반까지만 방문을 받는다고 쓰여 있다. 거기까지 갔는데 실내를 보지 못해 씁쓸했지만, 우리보다 보여주지 못한 아수르가 더 아쉬워하고 분통해하여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야 했다. 돌아오는 길, 그는 특별히 맛있을 거라며 수박과 커다란 멜론, 그리고 우리가 전날 먹으며 엄청 신기해 한 디기다라는 야자열매를 사주었는데, 이때도 계산을 하려는 나를 만류하였다.
나는 사실 낯선 분(이제는 아는 분이지만)에게 이렇게 잘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지만 뭔가 송구스러운 마음도 생겼는데, 그는 차에 돌아오자마 마자 나에게 알제리 돈이 많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우리 둘이 가진 돈 다 합해도 알제리 돈은 12000 디나르 정도밖에 안됨. 100달러 = 16000 디나르) 100달러씩 환전해서 쓰고 떨어지면 다시 환전하는 식으로 살고 있어서 알제리 돈은 늘 환전 금액 100달러가 안 되는 정도만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100 달러면 3일이면 다 쓰는데라며, 자기는 알제리에서 돈을 잘 번다고, 자신은 우리가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알제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돌아가서 사람들한테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이 순간은 의사소통 능력 향상) 말했다. 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것은 정확히 그전까지 느꼈던 너무 많이 얻어먹은 것 같아서 느끼는 미안함이 아니라 그의 호의를 비용 지불로 상쇄하려던 나의 태도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어느덧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길들여진 나를 발견하며 씁쓸함과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나도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낯선 이에게 그를 위해, 한국의 이미지를 위해 최선의 호의를 베풀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키다로 돌아오는 길, 서커스 경기장을 지나왔는데, 그는 자신의 딸이 서커스를 좋아한다며 내일 서커스를 보러 가겠냐고 물었다. 딱 봐도 동물이 등장하는 서커스였는데 그런 서커스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는 비가 웬일로 그러자고 아주르의 딸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내일 점심을 해주고 싶으니 점심에 오라고 하고, 양손 한가득 과일 봉지를 든 채 스키다의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레스피가 혼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파더 미셸과 푸르덴스는 일이 있어 다들 콘스탄틴에 감).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한글 과외 시작!
<표지 사진 : 안나바 해변에서, 아수르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