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물여섯
우리는 오늘 콘스탄틴을 거쳐 베자야(bejaia)에 간다. 베자야는 처음 알제에 왔을 때, airbnb에서 만났던 라바흐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소개하며 사진을 보여줬던 곳으로 바다 풍경이 보이는 산 사진이 마음에 들어 내가 지도에 표시를 해놨던 도시이다. 며칠 전 파더 미셸은 자신이 금요일 오후에 베자야에 갈 거라면서 원하면 함께 가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파더 티켓을 이용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일단 파더 미셸이 콘스탄틴에 계시므로 나와 비, 레스피가 알아서 콘스탄틴까지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었는데, 아침을 먹으며 알제리안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원하면 집에 가는 길 콘스탄틴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급하게 출발시간을 조금 앞당겨 9시에 스키다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프루덴스의 서운함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2년 후 탄자니아에서 다시 보자는 마지막 인사를 해보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알제리의 도로에는 경찰이 많은 편이다. 아니, 알제리 자체에 경찰이 엄청 많고, 검문도 잦은 편이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에게 큰 검문이 없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들리는 말로는 외국인은 특별히 더 검문 대상이 된다고 한다). 처음으로 경찰이 우리가 탄 차를 세워 신분증을 요구했다. 안 그래도 차에 오를 때 아저씨가 여권은 챙겼냐고 물어서 여권은 트렁크에 있는 큰 배낭에 있는데, 사본은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했던 차이다. 우리는 여권사본을, 그리고 레스피는 거주증을 보여줬다. 경찰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뭐라 뭐라 하고, 아주머니가 뭐라 뭐라 하고, 경찰이 뭐라 뭐라 하고, 아주머니가 단호한 얼굴로 뭐라고 하니, 경찰이 웃으며 가라는 손짓을 한다. 순간 두근, 두근, 조마, 조마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레스피에게 저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냐고 물으니 경찰이 우리 셋다 비자가 아니라 다른 걸 보여줘서 의심했고, 아주머니가 레스피는 학생, 우리는 여행자라고 하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냐고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아주머니가
우리는 무슬림이다. 무슬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고 하니 경찰관이 그냥 보내줬다고 했다. 꿀꺽~ 물론,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아. 정말 다행이다.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무슬림이어서(그때까지도 나는 그 부부가 무슬림인지 가톨릭인지 알 수가 없었었다. 뭔가 바깥세상에서는 종교가 매우 중요한데, 성당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나는 그 후에도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엄청 두근 거렸다. 아주머니(아랍어만 하심), 아저씨(아랍어, 불어 하심)는 영어를 못하시고, 레스피(스와힐리어, 영어하고 불어 학교에서 배우는 중)는 불어를 잘 못하고, 우리는 불어를 아예 못하는데 만약 문제가 불거지면 파더 미셸이나 아수르와 함께 있었을 때 보다 더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 아주머니를 집 근처에 내려주고 한참을 더 가서 콘스탄틴 성당에 도착했다. 금요일 11시 반. 예배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왔다. 이틀 만에 만난 파더 미셸이 매우 반갑다. 오랜만에 만난 시스터 마리도 우리를 반겨주었다.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부키나 파소 아이들도 보이고, 브라더 미셸과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다들 알제리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급하게 파더 미셸의 차에 올랐다. 그는 베자야에서 5시에 시작되는 예배를 인도해야 하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베자야는 콘스탄틴에서 알제 방향으로 절반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북쪽으로 끝까지 올라가는 곳에 위치한다. 로마 시절에 알제리 지역의 수도이기도 했단다. 가는 길 노란 들판이 펼쳐져 있었는데, 파더 미셸은 그게 밀을 추수한 흔적이라고 했다. 이 지방은 주로 밀 농사를 짓는데, 수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는 않아서 그해 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매년 수확량이 매우 달라진다고 한다. 길을 가면서 밀밭 중간중간에 게르처럼 지어진 커다란 텐트를 볼 수 있었는데 그건 남쪽에서 양을 키우는 사람들이 여름 동안에는 남쪽에 더 먹을 게 없어 양을 끌고 북쪽으로 올라와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즉, 알제리 유목민. 나는 그들이 짐을 말로 이동할지, 낙타로 이동할지 매우 궁금했지만 파더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금요일(여기 주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다. 마을 몇 개를 지났지만 마을들이 텅텅 빈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이 예배시간이라서 그렇단다. 2시가 넘어서야 연 식당을 발견하고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었다. 4시가 넘어 도착한 배자야 성당은 부지는 스키다나 콘스탄틴보다 작지만 비슷한 느낌의 2층 건물이다. 우리는 안내를 받고 2층 방에 짐을 풀었다. 파더 미셸은 우리에게 별말을 하진 않으셨지만 (스키다의 첫날 우리에게 소규모 예배를 참여하겠냐고 물으셔서 들어갔었는데, 프랑스어를 못하는 우리 때문에 쉽지 않은 영어를 써가며 말씀을 전하시느라 매우 고생하셨다. 그 후로 우리에게 예배에 참여하겠냐고 묻지 않으심)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비와 함께 예배에 참여하기로 했다. 알제리안 아저씨랑 결혼 후 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이탈리안 아주머니, 알제리안 아주머니 둘, 레바논에서 온 아저씨, 그리고 국적이 불분명한(알제리 분인지 잘 모르겠음) 두 아저씨, 신부님, 레스피, 우리 둘, 요즘 건물을 지키고 있다는 부키나 파소에서 온 학생, 이렇게가 예배 참석자의 전부였지만 예배를 위해 가운을 갖춰 입으신 파더를 보니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다. 사실 파더의 엄청난 배려(율동을 하시며 노래를 부르고 뭔가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액티브한 설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100%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예배에서 설교 내용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딱 묻는다. 무슨 내용인지 알겠냐고. 나는,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느낄 수 있어요.
그 시간에서 나는 좋은 기운이 내게 오는 것을 느꼈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심지어 가스펠 중에선 2개나 아는 것도 있었음) 나중에 목자가 어린양 하나를 잊어버린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레스피에게 들었는데, 그때서야 신부님의 그 율동이 떠난 어린양과 양 찾아가는 목자를 묘사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오묘하게 파더 미셸의 노래와 율동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여선생님을 연상시켰다). 예배가 끝나고 몇 분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사람들은 모여 저녁 준비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빵과 오징어 파스타를 준비해주셨고, 또 누군가 닭요리를 준비해 두었다. 우린 낯선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