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피의 눈물

이야기, 스물일곱

by 방자

아침에 일어나 내려와 보니 레스피가 혼자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어제 밤늦게까지 비와 공부를 하더니 이제 쓰기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탄자니아', '부키나 파소', '바나나', '오렌지' 같은 한글에서도 그대로 쓰는 영단어들을 써보라고 불러줬는데 곧잘 쓴다. 이렇게 한 학생이 한글을 깨치도록 돕고 가는구나. 뿌듯하다(공부는 비가 다 시킴).


파더 미셸, 레스피, 비와 나, 부키나 파소에서 온 데이빗이 둘러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는 중 이멘이 도착했다. 며칠 전 스키다에서 레스피는 내게 베자야에 가면 영어 잘하는 자기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우리 가이드를 부탁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라고 대답했다. 이멘이 바로 레스피의 친구이다. 예쁘장한 외모에 컬이 잔뜩 들어간 파마머리, 핑크색 나시티. 그녀는 아직까지 만난 알제리안 여자애들과 다르다(히잡도 하지 않았다). 레스피는 분명 나에게 이멘이 엄마는 카톨릭, 아빠는 무슬림인 알제리안이라고 했는데, 엄마의 영향인가? 어리고 이쁜 친구가 생길 거 같은 예감에 반갑다.


파더 미셸은 아침을 먹고 차를 타고 산(yemma gouraya)에 갔다가 레스피와 함께 스키다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늦어도 점심식사 후에는 출발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으니 이게 이번 여정에서 (생각만으로 벌써 아쉬운) 우리의 마지막 동행이다. 파더, 레스피, 이멘, 나 그리고 비 이렇게 다섯이 차에 올라 15분 정도를 이동했다. 베자야 자체가 지대가 높은 바다 앞에 솟은 돌산을 중심으로 오르막길이 잔뜩 있는 마을이다(이런 지형이 흔한 알제리라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지만, 베자야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예쁜 편인 듯하다). 산에 가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 라바흐가 보여 준 사진에 산에서 찍은 바다가 참 멋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산을 탈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차에 올랐다. 파더가 차를 타고 갈 거라고 해서인지, 그냥 산에서 풍경을 볼 생각만 하고 올라가야 한단 생각은 못 한 건지 운동화가 아니라 차코 샌들을 신었고, 물도 챙기지 않아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인 이멘이 나보다 더 불편해 보이는 예쁜 외출용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험난한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미쳐 생각하지 못했는데, 왕복 5시간 정도를 걸어서 산꼭대기까지 갔다 왔다. 투명한 바다와 돌산을 끼고 엄청나게 예쁜 장관이 펼쳐졌지만, 두어 시간 정도 돌밭을 걸어야 할 때는 발가락에 부딪치는 돌들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무엇보다 이 땡볕에 물 한병 없이(내려가는 길 만난 원숭이 한마리가 오렌지 주스 병을 들고 나발을 불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엄청난 부러움이 일었다).. 나는 산에 가고 싶다고 말한 내 입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현실. 여기서도 파더 미셸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청춘남녀 넷보다 훨씬 빠르게 산을 타신다. 비가 파더를 뒤따랐다. 여친의 외로움보다 파더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를 떠난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하던 일인데 현재 나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하므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흥미로운 건 레스피와 이멘이다. 엎치락뒤치락 가면서 나는 그들의 오묘한 애정 기운을 느꼈는데, 어머. 얘들 중간중간 은근슬쩍 손을 잡더니 내려오는 길에는 레스피가 이멘을 번쩍 들었다. 이야기도 심상치 않다. 레스피는 며칠 전 내게 했던 탄자니아 남자가 알제리에 와서 알제리 여자를 만나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살다 같이 탄자니아로 돌아가서 가족과 종교적 갈등을 겪었던 이야기를 이멘에게 하며 우리는 잘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기요미들을 보았나. 나는 그 둘의 이야기가 재밌어 한참을 약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걸으며 들었다. 둘이 꼭 잘 돼서 국제 커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멘도 레스피도 우리 때문에 여기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그걸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음).


이멘은 알고 보니 이슬람계 알제리안이 아니라 베르베르족의 후손인 카빌출신 알제리안이었다. 베자야 자체가 카빌지역으로 그들은 다른 언어(카빌어)를 쓰고,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도 많다고 (나중에 도심에서 보니 여성들도 히잡 쓰지 않은 사람이 매우 많았음)한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므로) 어떻게 잘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베르베르인들은 현 알제리가 비잔틴과 동로마 등에 의해 지배되면서 여러 차례 인종이 섞였다고 한다. 그리고 7세기 이슬람 제국이 들어오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막지대나 고산지대에 살게 되었고 지역마다 그들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 베르베르의 후손이자 베자야 고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카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알제리는 현재 이슬람 국가로 이 땅에 이슬람이 들어온 후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전(동로마, 비잔틴 시대)의 역사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베자야는 로마시대 알제리 지역의 수도로 도시의 성곽과 오늘 우리가 걸은 산길 등이 모두 로마 시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이 모든 이야기는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 내가 쉬고 싶어서 파더 미셸과 이멘에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았다).


나는 내려오는 길 고기라도 사서 미셸 파더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스키다에서 수차례 요리를 했지만 미셸 파더는 우리가, 아니 비가 한 요리를 한 번도 맛보지 못하셨다) 내가 '시간이 늦은 거 같죠? 우리 점심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트....' 말을 끝내기도 전,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먹으면 될 것 같다'라고 확답하셔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었다. 우리가 처음 파더 미셸에게 연락드렸을 때는 호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전한 숙소를 기대하고 한 연락이었고, 콘스탄틴에 머무는 동안은 숙소에 가격이 쓰여 있는 데다가 시스터 마리가 전체 관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청구된 비용과 소정의 헌금을 냈는데, 그 후 스키다에 이어 베자야까지는 머문 곳에 그런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행보나 파더 미셸과의 관계가 숙박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삼시세끼 함께 먹고 챙기는 진짜 파더와 자식들 같은 사이가 되었으므로 이제 와서 '저... 숙박비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라는 질문을 차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이건 너무 예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듦).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파더 미셸과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고 소개해주신 분과도(한국인 목사님) 아는 사이가 아닌데 이렇게 엄청 잘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고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쌩하니 가버리기도 뭔가 도리가 아닌 듯하고... 하아.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행하기로 했지만, 그게 최선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결국 냉장고 음식들로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파더 미셸은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러 올라갔다. 내가 레시피를 찾으니 이멘이 레스피가 슬퍼서 울고 있다고 했다. 레스피는 베자야에 오는 길부터 중간중간 파더 미셸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여기 더 머물 수도 있을 가능성에 이야기를 비쳤는데, 그의 마음과 달리 돌아가야만 하는 현실이(파더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함) 슬픈가 보다. 나도 맘이 짠하다(원래는 더 이상 파더 미셸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아쉬웠는데, 레스피가 울어서 감정 이입됨).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서 손을 흔들면서도 레스피는 계속 울었다. 다 큰 청년이 눈물을 보이는 것에 대해 찡한 마음이 들어 나도 울컥했지만, 나는 그가 우리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움에 우는 것인지(파더는 그렇게 이해하고 나에게 말함) 여자 친구 이멘과 헤어지기 싫어 우는 것인지 진실을 알 수가 없었다(비는 후자에 더 큰 가능성을 둠). 그들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설거지를 하고 방에 올라와 보니 발바닥에 영광의 상처(물집)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파더 미셸은 이멘에게 동네 구경을 시켜 주라고 하고 갔지만 나는 이멘에게 일단 쉬자고 했다. 그녀의 발에는 나보다 더 큰 물집이 잡혀 있었다.



<표지 사진 : 등산 중 보인 풍경. 돌산을 깎은 듯이 보이는 길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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