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멘과 베자야 데이트

이야기, 스물여덟

by 방자
우리 다녀올게~


아침을 먹고 이멘과 나, 둘이 길을 나섰다(비는 일이 많아서 바쁨). 나는 어제 하루 동안 겪으면서 그녀가 눈치가 빠르고 금방 배우는 똘똘한 소녀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물컵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면 물컵을 찾는 거냐고 묻고 찬장을 열어 물컵을 보여준다(레스피가 그런 센스를 좋아한 걸까 궁금). 6월에 스무 살이 되어 현재 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엄마와 11살 여동생 셋이 살고 있는데, 나는 그녀에게 무슬림 아빠와 카톨릭 엄마가 있다고 들어서 물어보니 둘은 현재 이혼을 한 상태이고(아빠는 재혼하심), 동생은 자신이 외롭다며 엄마에게 졸라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아마 일하는 엄마를 도와 어렸을 적부터 가사와 육아를 해 온 듯하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가족은 특별한 사이라고 말했고, 자신이 엄마와 동생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어서 엄마, 동생으로부터 자꾸 연락이 오고 있다고 했다(아닌 게 아니라 엄마, 동생에 레스피까지 합세해 쉼 없이 메시지가 와서 현실과 사이버를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없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제오늘 길을 다니며 보니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수두룩하게 하게 만나 인사를 하는 거 보면 친구도 많고 발도 넓은 소녀인 것 같다.


이멘는 로마시대에 지어졌다는 성곽과 지금은 개간되어 항구와 건물들이 지어졌지만 예전에는 도시로 들어오기 위한 입구였다는 커다란 문,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 등을 알려줬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성당 건물이 있는 동네는 구시가지로 건물 대부분이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길을 걷다가 UNIVERSITE라고 써져 있는 버스를 보고 대학에 가 보자고 제안했다. 아직까지 본 적 없는 알제리의 대학교가 보고 싶기도 했고, 땡볕을 피해 로컬버스를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버스비는 20 디나르. 공항에서 탔던 버스(50 디나르) 보다 작고, 차장이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티켓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건물들이 약간 차이가 있었음. 그건 독립 후 알제리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함)를 지나 대학 앞에서 내렸다.


그 대학은 배자야 대학이었다(이멘이 입학할 곳도 여기인데 우리가 간 캠퍼스가 아니라 다른 캠퍼스라고 한다). 도시에 4개의 대학이 있는데, 모두 배자야 대학으로 인문대, 공대, 경상대 등으로 캠퍼스가 도시 곳곳에 나눠져 있는 듯했다(레스피와 프루덴스가 다닌 콘스탄틴 대학도 콘스탄틴 1 대학, 2 대학 이런 식으로 나눠져 있었다). 시설 자체가 꽤 낙후된 터나 대학 내 그다지 볼거리가 있지는 않았다. 학교는 이번 주(일요일인 오늘이 첫날)가 개강이지만 내일부터 이틀간의 연휴(이드) 때문에 학생들은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도서관, 강의실 등의 기본 시설(개인적으로 도서관 시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행 중 새로운 도시나 대학에 방문하면 가능한 꼭 들려보는 편이다)을 둘러보고 싶어 건물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도서관은 2층 건물로 책이 있는 1층은 잠겨 있었고, 2층 열람실에는 사람이 많지 않고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강의실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어떤 건물에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뭐라 뭐라 하셨고, 이멘이 또 뭐라 뭐라 하니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우리를 구경시켜 줄 요량으로 앞장서셨다. 이멘이 영어를 하긴 하지만, 통역을 하거나 말을 잘 한다기 보단, 눈치 빠르게 잘 알아듣고, 간단하게 표현하는 정도라 바쁘게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주는 아저씨와 거기에 응대해야 하는 이멘(나는 할 수가 없으므로)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우리는 방마다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했고(뭔가 느낌이 이상했음), 그 과정에서 여기가 공대 학생들의 연구실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의 홈페이지와 학사정보관리를 책임지는 웹마스터가 주요 역할인 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건물의 가장 높은 사람인 헤드 디렉터(정확한 지위는 모르겠으나 총괄인듯함)의 방까지 들어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뭘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어쩌다 내가 여기 앉아 있게 되었는지였으나 그건 풀지 못함) 뭔가 내게 알 수 없는 기대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어린 통역사는 내 말을 불어로 통역하는데도, 그들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남긴 채 (마치 감사관처럼) 건물을 둘러보고, 헤드 디렉터가 직접 내려와 잠겨있던 화상 회의실까지 문을 열어주어 그마저 둘러 보고서야 건물에서 나왔다. 그들은 왜 나를 그렇게 마치 귀빈 대하듯 했을까?(아직도 궁금함) 뭔가 이상한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엔 같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여전히 바쁜 비를 홀로 남겨둔 채) 오후 시내 투어를 나섰다. 모레 떠날 알제행 기차표를 구매하고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는데, 아이스크림 마니아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맛이 섞여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내 취향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으나 이멘은 그 아이스크림을 엄청 좋아했다. 내일과 모레는 이드라 문을 연 가게가 없을 거란 그녀의 말에(어머니가 직접 전화해서 알려주심) 빵집, 잡화점, 과일/야채가게, 생선가게(3군데나 들렸으나 모두 문 닫음)를 들려 오늘, 내일, 모래 아침까지 먹을 것을 감안해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했다. 이멘은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내게 '니하오'라던지 '곤니치와' 등으로 인사를 건네고 손을 흔드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나도 신기하다(하지만 비와 둘만 다닐 땐 더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건다). 한 번은 길을 가다 어떤 사람이 '니하오'라고 하고 인사를 하곤 이멘에게 뭐라고 말했는데, 이멘 말로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전해달라며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헐~ 설마 아직까지 내가 못 알아들은 사람들이 내게 지껄인 소리가 저런 내용들이었을까? 뭔가 엄청 이상하다는 생각과 불현듯 경직된 이 사회가 다름에 대한 환상(다르게 생긴 나)을 확대시키고 이상하게 표출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알제에 간 데이빗를 대신해 성당 건물을 지키고 있는 부키나 파소에 서 온 카르멘이 아프리칸 쿠스쿠스와 닭요리를 준비해 주었고, 내가 오일 파스타와 샐러드를 준비했다. 다른 식사 준비 때와다르게 이멘이 핸드폰만 붙들고 있고 부엌으로 들어오질 않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저녁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이멘의 어머니와 동생이 왔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멘은 가고 싶지 않은데, 어머니는 그녀가 필요해 데리러 온 모양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돕다가 사라진 이멘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자신은 가야 한다며,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떠날 때까지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틀밖에 못 봤지만 내가 정말 좋았다며 볼뽀뽀 인사를 한다.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내게 기회가 되면 알제리에 다시 놀러 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멘에게 기회가 되면 꼭 한국에 놀러 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렁이는 그녀의 눈이 우리를 떠나야 하는 서운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고 엄마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서러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도. 괜히 그 아이가 똘똘하다는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했던 여행이라던지 삶의 선택들에 대해) 그녀가 자신의 길을 찾아 멋진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멘 안녕!



<표지 사진 : 저녁 식사 중 카르멘, 이멘, 나. 식사에는 비, 이멘의 어머니와 동생도 함께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레스피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