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서른둘
어젯밤 늦게까지 (여행자의 집 출판기념행사에 보낼) 영상 작업을 한지라 늦게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슈퍼에 가면서 아민에게 혹시 공항 가는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냐고 물었었는데 그러겠노라고 한 그는 아침 전화를 해서 만약 4시에 숙소에서 출발하면 자신이 무료로 공항까지 태워다 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9시 45분 비행기였고, 마음에 걸리는 비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6시쯤에는 도착하게 가려던 참이었기에 좋다고 했다. 청소를 하고, 짐을 싸고, 가지고 있는 향신료를 탈탈 털어(비가 고춧가루와 휴대용 양념 고추장 남은 걸 몽땅 넣고 독특한 파스타를 만들어 줬다) 밥을 해 먹고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요리를, 우리의 밥상을 가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으로부터 안녕이 기다리고 있다.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은 무려 5시간. 카페에서 180 디나르 짜리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역시 공항은 물가가 비싸다고 구시렁 거려 본다. 하지만 USD 1달러 정도에 공항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내가 가봤던 공항 중에는 한 두군데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초조함이 몰려온다. 만약 왜 이렇게 비자기간을 한참이나 넘겨 나가는지 묻고 그냥 보내줄 수 없다며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면 어쩌지. 나는 마지막으로 어제오늘 급히 여러 차례 찾았던 신을 찾고 (까다롭지 않은 직원을 만나게 해달라는) 우리의 안녕을 빌어본다. 무탈하게 넘어가길,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저 알제에서 당장 쫓겨나는 것이길...
출국신고서를 받고선 가슴이 더 쿵쾅거린다. 불어와 아랍어로만 쓰여 있는 지렁이 같은 글씨들이 나의 비자 만료일이 언제인지 묻고 있는 것만 같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것만 같다. 둘이 다짐해본다. '잘하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던 척 불쌍한 고양이 눈을 하고 선처를 기다리기로 철두철미한 연기 계획까지 세우고 출국 심사원(Passport control) 앞에 섰다. 그가 여권을 이리저리 살피고 비자를 보더니 내 출국신고서에 뭐라 뭐라 쓴다. 머라고 쓰는 걸까? 혹시, 비자 만료. 재입국 안됨? 난 재입국은 안 해도 괜찮은데... 그저 나가게만 해주세요. 머리 속에서 막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가고 있는 새 그가 내게 여권을 돌려준다. 비도 곧 도장을 받았다. 휴우~ 다행이다. 무사히 넘어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는 차마 큰 범법을 저지르지는 못할 소시민들이라고 소감을 나눈다.
나는 급하게 자그레브(크로아티아 수도)의 숙소를 찾아 예약했다. 혹시라도 (못 나가게 되거나 하는) 일이 생길까 예약을 하지 않고 미뤄뒀던 터지만 당장 내일 아침이면 자그레브에 짐을 풀 곳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이동했다. 밤 12시, 바르셀로나 공항은 매우 한적하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노숙 모드에 돌입한다. 나는 빠르게 침낭을 펴 누웠고, 비는 그제야 런던 숙박을 찾는다. 비가 탈 런던행 비행기는 6시 45분에 바르셀로나를 출발하고, 내가 탈 자그레브행 비행기는 7시에 출발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채 5시간 남짓. 그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순간을 소중히 하기보단 미래를 대비한다. 어쨌든 잠도 자야 하고 숙박도 예약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로맨스는 지금이 아니라 떨어져 있는 순간에 하면 된다.
6시가 채 안 되어 우리가 자리를 점유했던 맥도널드가 문을 열었고 공항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맥모닝으로 아침을 맞는다. 커피와 에그&베이컨 세트, 오랜만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다. 먼저 떠나는 비를 게이트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섰다.
조심히 다니고, 여행 잘해! 한 달 후에 봐~
나는 우리가 따로 다니더라고 충분히 연락하고, 그리워하며 즐기고, 외롭지만 자유롭게 잘 지내다 다시 만날 거라 믿기 때문에 특별히 (파더 미셸을 생각할 때보다)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그저 그가 찾을 오로라가 충분히 황홀하길, 내가 찾을 바다도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길. 한 달 후 각자 모은 이야기와 사진을 한아름씩 안고 찬란하게 다시 만나길. 바랄 뿐이다.
안녕, 알제리! 안녕, 비!
이젠 정말 안녕~ 내가 만난 알제리의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여! 내 앞에 있는 하나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나는 여기서 알제리 여행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안녕! 그동안 이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고 좋아해 준 그대여~ 나도 당신의 삶을, 여행을 응원하고 싶다!
<표지 사진 : 비행기에서 본 알제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