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_homo eruditio #13
읽고 쓰고 소유하다 _ 크리스 딕슨 / 2024 / 어크로스
회사에서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개발자가 있어 북스터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블록체인 책이라는 점에서 부담감도 있었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정도만 알고 있는 내가 이번 기회에 블록체인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스터디의 최대 수혜자는 다섯 명 중 나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메타마스크 지갑을 만들고, 업비트에서 매달 소액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모으기 시작했다. Mirror 계정을 개설해 직접 민팅도 해 보았고, 업비트에서 산 코인을 메타마스크로 옮겨보는 경험도 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몇몇 게임과 서비스에도 가입해 보았다. 민팅을 하며, 디지털 창작물이 어떻게 ‘자산’이 되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거기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이디나 휴대폰 인증 없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보며, 그 방식 자체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그저 최적화된 디자인일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대 변화 속에서 ‘최선의 방식’이 이미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무심코 올렸던 콘텐츠가 플랫폼만 이롭게 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지자, 점차 콘텐츠 업로드에 흥미가 식어갔다. 나는 조금씩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What was once thought, never be unthought.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발명은 아마도 인터넷일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를 연결하는 혁신을 넘어, 소유라는 개념에도 깊은 변화를 일으켰다. 나는 모두의 땅이었던 가상공간(오픈소스로 시작된 그 세계)이 어느새 거대 기업의 사업 영토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명확하게 인지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대가 없이 일하는 근로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디지털 자산은 누구의 것일까? 이 책은 인터넷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소유권이라는 낯익은 개념에 낯선 질문을 던진다.
옛날 옛적, 땅이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시절을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던 원시 부족의 사람들은 곡식과 땅이 개인의 것이 되는 세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노예와 노동자, 귀족이 구분된 계급 사회가 있었다. 나는 문명의 도시에 당도한 이들의 놀란 눈빛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_ ‘어떻게 땅과 곡식, 사람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지?’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니, 떠오른 것을 넘어서 공감했다.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_ ‘어떻게 내가 좋아서 올린 포스터가, 편하자고 만든 계정의 정보가 남의 돈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정당한가? 어차피 돈 한 푼 안 내고 공짜로 썼으니,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걸까?’
솔직히 말해 혼란스러웠다.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기업 네트워크 중심의 자본주의 사고방식을 쓰는 내가, 프로토콜 네트워크의 시대의 개발자 정신을 이해하고, 저자가 그리는 블록체인 기반의 미래를 상상하려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와닿은 건 이것이다. 기술 혁명으로 급변하는 현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조직에 속해 일하며 얻는 근로소득이나 부동산, 금과 같은 실물 자산 중심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나도 주식을 시작하게 된 걸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금융 앱 사용이 쉬워졌고, 코로나 기간 동안 젊은 층의 금융 자산 관심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성실한 근로자로 살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벌고 남은 시간에는 여행을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나 역시, 2020년 이전에는 돈을 버는 방법으로는 근로가 당연하다고 믿었다. 주식은 자본이 있는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인플레이션은 심하고 임금 상승률은 낮으며, 일자리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은행 이자만으로는 원금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다. 이런 상황인지라 금융 투자를 통한 자산의 가치 유지와 증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고 인식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세계는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디지털 자산은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지만 일부에게는 이미 가치를 인정하는 매력적인 자산이 되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 형태로만 존재하지만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다. 그 가치는 코드와 네트워크의 신뢰, 그리고 기술이 만든 희소성에서 비롯된다. 자산이 경제적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라면, 그 가치는 누군가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교환하거나 보관하려 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인류는 화폐라는 개념을 만들어 그 교환과 보관을 용이하게 해 왔다. 하지만 가치에 대한 합의와 인정이 없다면 그 화폐는 종이조각일 뿐이다. 세계 금융위기에서 목격된 국가 부도가 그 증거다. 실물 자산이 제도와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면, 디지털 자산은 인터넷이라는 무형의 공간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순식간에 이동하고 확산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소유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게 될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블록체인 네트워크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식처럼 금융 앱에서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자산과, 메타마스크 지갑에 담긴 NFT는 겉보기엔 모두 디지털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식은 기업의 실물 자산과 수익에 기반해 가치를 평가받고, NFT나 암호화폐는 네트워크와 커뮤니티가 합의한 가치 위에서만 서 있다. 내가 민팅을 하며 느낀 건, 클릭 몇 번으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라도, 블록체인에 기록된 순간 이건 내 것이라는 감각이 확실히 생긴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복사 가능한 파일이 아니라,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디지털 형태의 자산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소유감을 맛봤다.
저자는 블록체인을 둘러싼 세력을 두 부류로 나눈다. 컴퓨터 진영은 블록체인을 기술 혁신과 사회 시스템 개선의 도구로 보고, 카지노 진영은 투기와 단기 수익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에는 이런 충돌이 블록체인의 신뢰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알게 된 지금은, 이 긴장 자체가 기술을 더 빠르게 진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성장의 동력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디지털 자산을 거대한 투기판으로만 보지 않는다. 물론 위험은 여전히 크지만, 동시에 창작자와 사용자가 더 직접적으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민팅이나 블록체인 서비스 가입 같은 작은 시도들을 계속 이어가 보고 싶다. 기술이 주는 가능성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곧 내 공부이자 놀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읽고 쓰고 소유하다>를 읽으며 나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이해보다 변화하는 시대의 소유 개념과 탈중앙화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상상에서 더 큰 자극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을, 인터넷이 ‘읽는 시대’에서 ‘쓰는 시대’, 그리고 ‘소유하는 시대’로 변해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온라인에서 읽고 쓰는 모든 것에 소유권이 생긴다는 이중적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역시,
Any fool can know; the point is to understand.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소유하게 될 것인가.” 그 질문은 아마도 기술보다 훨씬 오래 우리 곁에 남아, 앞으로의 선택을 흔들어 놓을 것 같다.
* 토크노믹스(프로토콜 설계)는 “왜 사람들이 이 네트워크에 머무르고 행동하는가”를 설계하는 경제적 동기이고, 지배구조(의사결정권)는 “누가 그 네트워크의 규칙을 만들고 바꾸는가”를 설계하는 정치적 질서이다. 이 두 가지는 Web3에서 경제 시스템과 민주주의 시스템이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 책에서 접한 흥미로운 블록체인 개념들 : 디지털소유권, 탈중앙화, 탈플랫폼화, 토큰(Token), 민팅(Minting), 토크노믹스(퍼셋/싱크), DAO, 스마트 컨트렉트, 가스비.
* 블록체인 입문, 이렇게 시작해 보세요!
1. 메타마스크 지갑 만들기 → 비밀번호와 복구 구문은 꼭 안전하게 보관!
2. OpenSea 접속 → 지갑으로 로그인하고 NFT 세상 구경하기
3. Mirror 에서 글 쓰기 & 민팅 → 내 글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순간을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