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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듬 Sep 24. 2023

인생 처음 브라질리언 왁싱

브라질리언 왁싱 


20대 중반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1년 정도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여자 둘이 함께 사니 바닥청소를 하루만 건너뛰어도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다. 돌돌이 테이프로 바닥을 수시로 치우지만 긴 머리카락이 돌돌이를 몇 번씩 휘감아 테이프를 떼기 곤란하게 만든다. 그런데 테이프엔 머리카락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두껍고 꼬불꼬불한 일명 꼬불털들이 달라붙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털들이 모두 내 것이라는 것을. 


같이 살았던 친구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했기 때문에 꼬불털이 떨어질 일이 없었다. 그 반면 나는 내추럴 그 자체. 털이 많아서인지 음모도 풍성한 편이었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꼬불털들을 치우면서 순간 친구에게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면 좋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편하고, 생리할 때도 깔끔하다는 말에 순간 솔깃했다. 생리를 하면 핏덩이들이 털에 뭉치고, 샤워가 아니고서나 깨끗하게 닦아 내니가 쉽지 않은데, 털이 없으니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은밀한 곳을 보이고, 제모를 한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고, 곧 마음을 접었다. 


과거 호기심에 면도기로 그 주변을 살짝 밀어보았다가 털이 자랄 때쯤 아주 끔찍한 가려움과 고통 (소위 말하는 삼보일쾅)을 경험하고 난 뒤로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곳의 털은 아주 무성하게 자랐다. 그렇게 2n 년 이상을 살아오다가 29살이 되던 해에 집 근처에 왁싱 샵이 생겨서 할인을 한다는 배너를 보게 되어 관심이 갔다. 그리고 털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모 중의 제모, 제모의 꽃 브라질리언 왁싱을 해보지 않은 자가 제모에 관해 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예약을 덜컥해 버렸다. 


그리고 당일, 걱정이 몰아쳤다. 미쳤다 미쳤어. 내가 왜 왁싱을 한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할까? 수많은 고민이 됐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은 왁싱샵을 향했다. 내가 예약한 곳은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구 개업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내부는 밝고 깔끔했다. 간단하게 설문조사와 인적사항들을 적고 안내를 받은 뒤 왁싱룸으로 들어갔다. 왁싱룸은 약간 어두운 조명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아랫부분을 씻고 배드 위에 누웠다. 왁싱이 처음이라는 말에 떨렸지만, 왁서 분은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스틱으로 왁스를 떠서 털 부분에 붙이고 때 내는 방식이었는데, 위생적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중요한 부분에서 조금 멀리 시작했다가 점점 안쪽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걱정과는 아프진 않았다. 다년간의 제모 경험 때문인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 레이저 제모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제모를 하고 왁서분과 나밖에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제모를 받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애인과 함께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 커플들도 있다며 나중에 남자친구와 함께 오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 왁싱을 받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안되어 그저 허허하고 웃어넘겼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왁싱은 안쪽으로 갈수록 고통이었다. 가끔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따갑긴 했지만, 신경 써서 해주셔서 괜찮았다. 그리고 그리고 앞(?) 부분이 끝나고 드디어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엉덩이가 남아 있었던 것.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더 민망했는데 무릎을 끌어안은 상태에서 엉덩이 안쪽 골이 잘 보이게 한 다음 왁싱을 받았다. 이 부위를 할 땐 민망해서 고통의 정도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아찔한 왁싱이 끝나고 나서는 받은 부위가 살짝 얼얼하긴 했지만, 괜찮은데?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털이 없어진 중요 부위를 본 건 너무 오랜만이라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털이 없는 그곳은 마치 닭살 같았고, 생긴 것도 촉감도 생닭 그 자체였다. 팬티 안에 생닭을 품고 있는 느낌. 왁서 분께서는 그 부위기 민감해지기 때문에 만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계속 손이갔다. 또 제모한 부분에 각질이 덮이면 인그로운 헤어가 생겨서 염증이 일어날 수 있으니 관리를 해주라고 했다. 그리고 왁싱을 자주 받으면 지금보다 덜 아프다는 말에 솔깃하여 패기 있게 패키지를 끊었지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왁싱을 받지 않았다. 


물론 왁싱을 하고 나서는 편하다!라는 느낌은 확실히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꼬불털에게도 해방되었고, 생리 때 찝찝함도 덜게 되었다. 하지만 팬티 안에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허전함과 옷을 입고 있지만 나 혼자 발가벗겨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왁싱을 하고 그곳을 관리해줘야 한다는 것이 단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왁싱을 하고 질염이 덜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진 않은 것 같았다. 


그곳에 털이 있는 이유는 있을 터. 보호막(?)이 없어진 것 같은 생각에 자연스럽게 다시 털을 기르기 시작했다. 



종류 : 브라질리언왁싱

제모 난이도 : ★★★★★ 왁싱 샵 가기를 마음먹는 것 자체가 고난도

통증 : ★★★★★ 이때까지의 제모 중 가장 아프지만 개인적으론 참을 만 함 

장점 : 꼬불털과 해방, 생리 때 편함 

단점 : 인그로운 헤어가 생기지 않게 관리를 잘해줘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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