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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듬 Sep 18. 2023

털이 타는 냄새는 오징어 굽는 냄새와 같다

레이저 제모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던 대학생 때였다. 당시 친구들과 나는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의 세일 기간을 꿰뚫고 있었고, 세일기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화장품 가게에서 쇼핑을 했다. 그러면서 이 화장품 좋더라, 이 네일컬러 신상이 나왔더라 등등 꾸밈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주 관심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공 수업을 함께 들으며 사이가 두터워진 같은 과 친구 한 명이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나 고민 있는데"

"뭔데 뭔데?"

"여기 보여? 인중 좀 까맣지 않아?"


친구가 손으로 가리킨 인중을 자세히 보았지만, 평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괜찮은데?"

"하~ 내가 인중에 털이 좀 많은데, 눈썹칼로 밀었더니 까맣게 나는 것 같아 어쩌지? 레이저라도 받아볼까?"


인중에 털이 많아서 고민이라는 친구 말에 살짝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 그 친구를 봤을 때 인중에 수염이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의 말에 괜히 나도 거울을 들여다보았고,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인중 털이 거뭇거뭇 해 보이는 것 같았다.  


"네가 말하니까 나도 좀 까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이거 내가 검색해 보니까 인중털은 밀면 안 된데, 밀면 남자처럼 까칠까칠하게 날 수도 있대"

"헐~ 그럼 어떡해?"

"레이저 제모받아야지"

"레이저 제모?"


당시엔 레이저 제모를 받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고민을 했지만, 그 이후로 화장을 할 때 인중 부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침 피부과 할인 행사 기간이라는 말에 솔깃해졌고 결국, 친구가 쏘아 올린 인중 털 이야기에 나와 친구 2명은 레이저 제모 예약을 위해 피부과에 갔다. 피부과엔 신체 부위 별로 레이저 제모 가격이 있었다. 인중, 겨드랑이, 팔, 다리, 복부, 헤어라인, 얼굴 등... 사람이 털이 날 수 있는 모든 부위가 적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신 제모를 하고 싶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으로 인중과 겨드랑이만 하기로 했다. 


레이저 제모를 하기 위해선 전날에 제모를 해야 했는데, 타인에게 제모를 받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렸다. 여름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피부과엔 제모를 받기 위한 손님들도 많았는데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도 털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차례가 되어 긴장되는 마음으로 레이저 제모실로 들어갔다. 나 외에 2~3명이 더 있었는데, 사람들은 눈에 요상한 수경 같은 보호경을 쓰고 만세를 하고 누워 있었다. 레이저가 번쩍이고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묘하게 타는 냄새가 나는... 마치 그곳은 제모 공장 같았다.


먼저 받은 친구들의 후기는 아프다는 친구, 안 아프다는 친구 반반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 베드에 눕자 내 눈에 보호경이 얹어졌다. 인중부터 시작했는데, 뾰족한 도구로 인중을 콕콕 찌르는 정도의 따끔함이 느껴졌고,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다. 이게 바로 털이 타는 냄새인 건가... 싶었다. 코 바로 아래에서 제모를 하니 냄새가 더 잘 났다. 내 털이 타는 냄새를 직접적으로 맡다니. 매우 묘한 느낌이었다. 어쩌다 사람은 레이저로 털을 지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게 맞나. 생각에 빠져들 때쯤 인중제모는 금방 끝나고 겨드랑이로 넘어갔다. 


겨드랑이는 인중보다 털이 더 두꺼워서 그런지 따끔함이 더 컸다. 가끔 강한 녀석(?)은 레이저가 닿으면 고통이 더 강해서 전신이 움찔거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 고통을 참으면 귀찮은 겨드랑이 제모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비록 9번을 더 해야 했지만, 괜찮았다. 


당시 10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대학생에게는 조금 큰 금액이었던 터라 꾸준하게 제모를 받았다. 그 결과 대략 1년간은 털이 많이 자라지 않았고, 이후에는 듬성듬성 나는 수준이었다. 어떤 사람은 꽤 오랫동안 자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워낙 털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털들은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운 제모 중 하나였다. 


하지만 레이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에 피어난 꽃처럼 꿋꿋이 자라는 털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털을 보면서 이 녀석들을 계속 잘라내는 게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종류 : 레이저 제모 

제모 난이도 : ★★ 피부과에 가서 받으면 되는 거라 쉽지만, 귀찮음  

통증 : ★★★ 따끔하는 통증  

장점 : 반영구적으로 확실히 레이저 제모를 받으면 털이 많이 자라지 않음 

단점 : 비용 및 피부과에서 받아야 한다는 귀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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