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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듬 Aug 18. 2023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제모

왁스 스트립

제모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것을 알았던 엄마는 제모 제품이 떨어질 때쯤이면 마트에서 제모 크림이나 면도기 같은 것을 사주시곤 하셨다. 나의 수북한 털에 어느 정도 일조를 했다는 마음의 짐 때문이셨을까... 말로는 "털 밀지 마라"라고 하지만 제모 제품이 떨어지지 않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엄마였다. 


그날도 제모크림이 떨어질 때쯤 엄마가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제모 제품도 함께 사 오셨는데 기존에 내가 쓰던 제모크림이 아닌 다른 것을 사 오셨다. 


"어 이건 뭐야 신상이야?"

"네가 원래 쓰던 거 아닌가? 잘 못 샀네"

"아~ 이것도 써보고 싶었는데, 한 번 써볼게"


엄마가 사 온 건 같은 회사에서 나온 다른 제품이었다. 아마도 제모 크림이 있던 곳 바로 옆에 있어서 엄마가 헷갈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반품이란 없는 모녀였기 때문에 이왕 산거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엄마가 사 온 신상 제품은 기존에 왁스를 바르고 거즈를 붙여야 했던 번거로움을 보완한 제품으로 파스처럼 붙였다가 떼기만 하면 제모가 되는 왁스 스트립이었다.


참고로 털이 많은 사람에겐 파스 붙이는 것도 지옥이 된다. 잠을 잘 못 자서 목에 담이 걸릴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목덜미에 파스를 붙이기가 겁이 났다.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도 머리카락과 털이 수북했기 때문에 파스를 붙였다가 떼면 파스엔 털 몇 가닥이 뽑혀나가 눈물이 찔끔 났다. 


그와 같은 방식이니... 효과는 탁월할 것 같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파스 같은 제품을 털이 난 곳에 붙이고 떼어내면 끝. 그런데 이렇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학습된 고통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떼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한 번에 빠르게 확! 떼내야 했지만, 떼어내는 팔도 고통받는 팔도 내 팔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그래봤자 당시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왁스스트립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왁스스트립 하나를 뜯고, 핑크색 왁스가 발린 부분을 왼쪽 팔 털이 가장 많이 난 곳에 얹었다. 그리고 왁스에 털이 잘 붙을 수 있게 문질렀다. 털이 엉키며 왁스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떼어내려는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끝부분을 살짝 집어 들어 올리니 털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딸려오며 고통만 남았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숨을 꾹 참고, 눈을 질끈 감은 채 팔에 붙은 스트립을 확! 뜯었다. 


"윽!"


왼쪽 팔에 따가움이 찐~하게 전해졌다. 눈물이 살짝 맺힌 눈을 겨우 뜨고 스트립에 붙은 털들을 확인했다. 핑크색 왁스에 검은 털들 수십 가닥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웠지만, 얼른 반으로 접어버렸다. 그리고 왼쪽 팔을 확인했는데, 강력한 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피부 깊숙이 박혀있었다. 결국은 깔끔하게 제모되지 않은 곳은 면도기로 밀어야 했다. 


이 방법은 자주 쓸 순 없을 것 같았다. 고통도 고통이고, 두려움 때문에 시간도 배 이상 들었다. 또 떼어내는 방법이 자극적이다 보니 팔 부분이 빨갛게 표시가 남았다. 그 이후 왁스 스트립은 화장실 수납장에 오래도록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왁스스트립을 통해 빠진 털들은 다시 자라는데 시간이 걸렸다. 고통을 감내하는 만큼 털이 자라는 속도는 늦출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자학과도 같은 제모를 자행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털도 계속 뽑으면 고통이 줄어든다 곤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면서까지 제모를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종류 : 왁스 스트립 

제모 난이도 : ★★★ *붙이고 떼어내면 되지만, 떼어내는 용기가 필요 

통증 : ★★★★ *털 뽑히는 통증  

장점 : 슈가링 왁싱에 비해서는 간편한 편, 면도기 보다 털이 자라는 속도가 느림

단점 : 피부가 예민할 경우 자극이 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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