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사일육

by 윤소정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금세 글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 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운동하고 아이들과 놀다가 잠드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록을 시작하고 보니 시시각각 그 빛을 달리하는 생각과 감정이 마음의 그릇에 담기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오늘'이라는 고유한 상태의 기록은 이러하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서둘러 동대문종합시장으로 향했다. 교회 성찬보 만드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내가 성찬보 만드는 일을 맡다니, 스스로도 겸연쩍다.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어느 모호한 지점에 나는 서있기 때문이다. 누가 묻는다면 '삶의 신비에 마음을 활짝 열어둔 신비주의자예요'라고 답하겠지만,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크리스천이다. 어릴 적 의식 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다가 이십대 초반에 튕겨져 나오기는 했지만 삶이 흔들리면 다시 교회를 찾았다. 이십대 중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현재 다니는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십년째 잠행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최근에는 교회 내 소모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눈인사를 주고받을 때 상대의 눈이 내게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혹 내가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신앙과 신학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사람에게만 마음이 가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좋아서 사람을 만나러 교회에 간다 (남편도 지금의 교회에서 만났다.) 그래도 그래도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내 영혼에 '영성'이라는 순수한 그 무언가가 옅은 향기를 내기도 하니까 사람들을 완전히 속이고 있는 건 아닌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개미굴 같은 상가 안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혔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두 시간 안에 적당한 천과 레이스를 사서 지하 1층에 있는 수예점에 맡겨 제작을 완료해야 한다. 매장 수만 해도 4천개가 넘는 그곳은 길치인 나에게는 미로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의 미로다. 원단가게들을 돌아보다 '여기 괜찮네. 다른 곳 둘러보고 다시 와야지.'하고 돌아서면 그 가게는 그걸로 끝이다. 반경 30미터쯤 되려나,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아보아도 찾는 가게는 없다. 삼십분쯤 헤매다가 곧장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1층에는 1평 남짓되는 크기의 수예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수예점답게 오로지 '손'과 '재봉틀' 뿐이다. 타다다다다, 타다다다다, 바쁘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를 따라 걷는다. 찾아다, 고운 커튼 수예점. 전에 와본 곳이다. "제가 이런 형태의 성찬보를 제작하려고 하는데요. 어디 가서 재료를 구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핸드폰 속에 저장된 사진을 내밀며 내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자그마한 키에 뽀글 파마를 한,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사십대 후반, 오십대 초반 즈음의 사장님이 시원스레 말씀하신다. "따라와요!"


졸졸졸졸 따라가서 척척 골라주시는 천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수예점에 돌아온 사장님은 샘플을 보여주시며 이제 가서 "테슬"을 사 오라고 하셨다. 손가락 끝으로 미로찾기의 경로를 알려주신 덕분에 레이스 가게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돌돌돌 말린 레이스가 수십가지, 아니 백가지도 넘게 진열된 가게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레이스 가게 사장님께도 같은 작전으로 핸드폰을 내밀며 "제가 이런 걸 만들…" 라며 입을 뗐다. 내가 문장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 그런 거 잘 몰라요. 레이스는 여기 있는 게 다니까 직접 보고 고르세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무조건 심플한 걸로, 가장 심플한 걸로 골라 아홉마를 샀다. 조금 헤매다가 수예점으로 돌아왔는데 수예점 사장님이 보시더니 이건 아니란다. 모티브라는 레이스 부분이 깔끔하게 커팅되어 있는 형태여야 하는데 내가 사온 건 면직물에 모티브가 연결된 형태였다. 레이스 바꾸러 같이 가자는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잠시 우물쭈물했다. 재봉일이라는 게 시간이 곧 돈인데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재료 구입을 끝내고, 사장님과 함께 성찬보의 사이즈를 조정했다. 공임비를 지불하고 작업하시는 사장님 옆에 서서 종알종알 수다를 떤다. "작년 이맘때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려고 바자회를 열었는데요. 그때 사장님께 손수건 부탁드렸었어요." 노란색 나비 문양을 수놓았다며 가지고 있던 사진을 보여드리자 얼른 기억해내셨다. 타다다다다, 타다다다다, 재봉틀이 바쁘게 돌아간다.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으므로 나는 성찬보가 완성되자마자 감사인사만 드리고 얼른 돌아서야 했다. 사장님께서 가방을 메고 나서는 나를 큰 골목까지 따라 나오셨는데 그때 나눈 이야기 중에 하나가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을 걸렸다.


이제 손수건은 더 안 만들어요?

우리, 너무 빨리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쉽게 무덤덤해져버린 건 아닐까?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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