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투운동이 시작되기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동생을 오랜만에 만났다. 대기업 2년 차인 그녀는 이직을 결정했다고 했다. 직장 상사의 집요한 괴롭힘과 성희롱이 그 이유였다. 마치 귓가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악취 나는 숨을 내쉬 듯, 그녀의 상사는 더러운 말들을 내뱉었고 그 말들은 고스란히 그녀의 마음에 달라붙었다.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듯, 기억을 더듬던 그녀는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회사를 나오기 전 그를 감사팀에 고발할 거라고 했고, 나는 그런 그녀와 응원의 말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1월 말부터 지금까지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새벽에 눈 뜨면 포털과 sns에 새로 올라오는 폭로 글을 읽는다. 마음이 지옥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어쩌면 나의 것이었을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운 좋게 피해왔을 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지 않다.
그리고 어젯밤, 페이스북에, 이미 이직을 한 동생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감사팀에 상사를 고발하고 그녀가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온갖 추문에 시달렸고, 추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직장상사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 그녀는 그녀 자신이 '그냥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기를, '제발 죽'어버리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피투성이 맨발로 어둡고 거친 숲길을 홀로 걸어 나온 그녀에게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신호등 앞에 서서 생각했다. 초록불이 켜지고, 건너편에 서있던 소녀 둘이 사뿐히 달려온다. 얼굴 가득 화사한 웃음을 띄고.
WY야, 너의 용기가 이 소녀들을 지켜줄 거야. 너무 많이 아프고 너무 많이 힘들었지만 너의 용기가 너를 지켰고, 이 소녀들도 지켜줄 거야. 죽지 않고 살아줘서, 끝까지 싸워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