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요가 가르쳐줄 수 있어?
토요일 오전, 남편과 아이가 아침 일찍 빵집에서 사 온 바게트와 피자빵, 그리고 손만 대면 바스러지는 크로와상에 과일과 우유를 곁들인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난 후였다. 남편은 테이블 위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정말로 손이 닿자마자 바스러져버린 태율이와 라윤이의 "끄로와상" 부스러기를 쓸어내고 있었다. 물걸레질도 해야지 하며 청소기를 꺼내 드는데 남편이 물었다. 지금 요가를 가르쳐줄 수 있냐고. 잠시 멈칫, 내 귀를 의심했다. 일단 의심의 과정은 빠르게 건너뛰자, 얼른 좋다고 답했다. 들고 있던 청소기를 그 자리에 살짝 내려놓고 빨라지는 걸음을 누르며 일명 요가방인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내가 요가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나는 겨울이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던 나는, 마음의 추위 또한 많이 탔다. '난 개인주의자야!' 부르짖고 다니지만 늘 사람을 그리워하고, 강아지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고양이의 습성을 더 많이 가진 나는 '강아지 같은 고양이과 사람'이었던 것이다. 가수 오지은씨도 노래하지 않았나. 고독한 고양이과 사람들도 혼자가 좋을 리는 없다고. 여하튼, 나는 외로웠고 자주 아팠다. 그리고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요가였다. 몇 년 뒤 나는 결혼을 했고, 라윤이와 태율이가 태어났는데 이번에는 외로움의 반대편에 서서 자주 아팠다. '치유'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상담'과 '바디웍 (그중에서도 요가)'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테라피 요가 지도자 과정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요가 지도자 과정은 마음을 먹기까지 계속 갈팡질팡했는데, '그 무엇이 되든, 내 몸을 회복하고 내 가족의 몸을 돌보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살피고 돌보는 시간에 크고 작은 회복과 치유의 경험들이 쌓였다. 두 아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스며들어 까르르 웃음이 쌓였는데, 남편에게만은 다가가지도 못했다. 정말 좋다고, 가르쳐주겠다고 나서면 돌아오는 답은 "다음에 할게요."였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외판원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걸 거저, 그것도 집에서 가르쳐주겠다는데!'라는 생각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거저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 집에서 가르쳐주는 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기다리자, 스스로 마음이 동할 때까지.'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리고 긴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오늘, 남편이 먼저 요가를 가르쳐달라고 한 것이다. 거실에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둘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하나 틀어놓고, 남편과 함께 요가 도구만 가지런히 놓인 작은 방으로 갔다. 나는 남편에게 매트 위에 편안하게 서보라고 했다. 세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션을 받는 사람의 몸을 먼저 살펴야 한다. 양쪽 어깨가 나란한지, 등의 모양은 어떠한지, 골반의 위치는 어떠한지 살피는데 남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만나지 10년도 넘은 사람,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사람인데 그의 어깨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본다. 등의 곡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내가 즐겨 기대는 그 어깨가, 두 팔로 꼭 잡아 끌어안으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그 따뜻한 등이, 눈에 설다. 여보, 미안해요. 가까이 두고 놓치는 것들, 사랑한다 말하고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모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