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선생님, 선생님은 만약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딱 한 가지만 들어준다면 무슨 소원을 빌 거예요?
요가 수업 시간, 한 아이가 물었다. 떠오르는 게 없다. 아이에게 아이의 소원을 되묻는다. 영리한 아이는 제일 먼저 소원을 다 들어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다음에는 '불멸'을 첫 번째 소원으로 빌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영원히 소원을 빌며 행복하게 살 거라고도 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면 행복할까?" 내가 묻는다. "당연하죠." 아이가 답한다.
나는 사는 게 두렵다. 너무 오래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일이 두렵다. 불멸을 끝내기 위해 '도깨비 신부'를 찾아 헤매던 드라마 속 '도깨비'가 왜 그냥 도깨비가 아니고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였겠는가? 그 모든 날들을 오롯이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날도, 쓸쓸한 날도 말이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 나는 가까운 이를 잃었다.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믿을 수도 없었다. 그 가을, 햇살은 여전히 찬란했고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는 듯 보였다. 초록의 나무들은 빛깔을 달리하고 있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다. 흐르는 세상 속에 나만 홀로 멈추어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세상을 멈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생명이 떠났는데 여전한 세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밤이 되면 졸린 내가 견디기 힘들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나의 공고했던 세계관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나는 그 잔해더미 위에 망연히 걸터앉아 그 시절을 살았다. 공부고 뭐고 삶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했던 시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울고 또 울고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었을까? 뿌옇기만 하던 눈 앞이 어느 한 날 아주 선명해졌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전에 없이 깊고 맑게 공명했다. 그중에서도 한 선배와 그런 경험을 가장 많이 공유했는데, 선배는 학부시절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마치 '애도'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처럼 재촉하는 세상에서 선배는 늘 울고 싶은 만큼 울라고,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말했다. 내 눈가가 촉촉해질 때면 가만히 손을 잡아주었다.
페이스북 '1년 전 오늘'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바로 선배를 만나고 온 날의 짧은 기록이다. 그 날 선배는 육아에 지쳐있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맛있는 밥을 사 먹였다. 그리고 꽃집으로 데려가 다홍의 꽃을 한 다발 사서 품에 안겼다. 잘 하고 있다는, 앞으로도 잘 할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알았다. 휘청이던 그 시절, 선배는 행여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주변 친구들에게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학과 사무실을 통해 나의 고향집 전화번호를 확보해두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늘에야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 둘 다 자취생이니까 아침마다 학교 식당에서 같이 밥 먹자던 선배의 제안이 무슨 의미였는지.
JY언니, 다시 벚꽃 비가 내리는 계절이에요. 저 이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언니. 언니가 아니었음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을 거예요. 많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