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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Apr 22. 2021

청바지 예찬

OOTD_outfit of the day

매개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 그로 인한 다른 어떤 대가도 바라지  .

편안하면서도 적절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주인공으로 조명받으려고 애쓰지 않는 청바지, 청바지야 말로 그렇다. 부담이 되는 일, 역량 밖이라 여기는 일을 맡았을 때마다 내가 떠올리곤 하는 말에 정확히 부합한다. 나는 교복을 벗어난 이후 늘 청바지다. 한 때 점프슈트나 요가 팬츠로 이탈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상은 청바지다. 스트레이트진에서 스키니진을 거쳐 요즘엔 하이 웨이스트 보이프렌드진인데, 어느 디자인이건 몸에 꼭 맞는 것을 선호한다.


청바지는 충실하다. 매일 아침 흐느적거리는 내 몸을 일으켜 세워 힘 있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인다. 청바지는 동적이지만, 멈추었을 땐 서거나 앉는다. 눕지 않는다. 또 단순하지만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움직일 때마다 바지단 밑으로 복숭아뼈를 살짝 드러내고 허리 라인을 흐트러짐 없이 잡아내 맵시를 더한다. 인디고, 블루블랙, 코발트블루, 딥블루, 젯, 그레이, 라이트/미디엄/다크 스톤워시 등 다양한 푸른색을 아우르는 컬러는 또 어떤가! 무채색과 원색, 파스텔톤, 그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청청의 조화도 귀여움으로 소화해낸다.


아이의 등굣길에 함께 나서기 위해  스카이 블루 워싱 진을 입는다. 올리브 그린색 7부 니트 티셔츠 밑단을 바지 안쪽에 쏙쏙 끼어넣고 베이지색 오버핏 트렌치코트를 걸친다. 이따 오후에 남편 라이드 해줄 때는 언니에게 선물 받은 크림색 면 스커트와 연한 에메랄드 녹색 셔츠로 갈아입어야지, 갈아입어야지, 갈아입어야지. 하지만 주문은 실패하고, 오늘도 종일 청바지가 활약한다. 다시 주문을 외워본다. 청바지 같이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 이번 주문은 꼭 성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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