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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May 24. 2021

나의 레퍼런스

자매란

자매는 두 살 터울이다. 첫째인 언니가 모든 ‘최초’의 경험을 하고 나면, 둘째인 동생이 1년 또는 2년 후에  ‘처음’이지만 '최초가 아닌' 경험을 한다. 둘째의 처음이란,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획기적인 연구 이후에 쏟아져 나오는 반복 연구 논문을 읽는 일 같다. '이미 익히 아는 부분은 건너뛰고, 그래서 이 연구/경험에서 새로운 점은 뭔데?’하는 오만함이 끼어든다. 부모님이나 주변의 반응이 덜해서도 아니었다. 둘째 그녀 자신의 태도가 그러했다. 웬만한 것은 직접 경험하기 전에 이미 눈으로 익히고 들었기 때문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생리도 그랬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변화를 감지하고 그녀가 처음 마주한 것은 놀라움이나 당혹감이 아닌 ‘어, 나 너무 빠른 것 아니야? 언니가 생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라는 차갑고 건조한 생각이었다. 다가와 말을 건네던 상기된 언니의 얼굴, 그녀의 어머니가, 혹은 어머니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안겨준 장미 꽃다발의 색과 향을 희미하게 지우고, 그녀는 의식 위로 하나의 생각만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언니는 중학교 2학년 초겨울에 초경을 시작했지? 곧 중학교에 입학할 거니까 나의 초경 시점도 초등학교 6학년이 아니고, 중학교 1학년이야.' 둘째인 그녀는 '최초'를 참조로 '이후'의 상황을 해석하고 수정했다.


하다못해 물건과 맺는 관계도 그랬다. 워크맨, CD 플레이어, 삐삐와 핸드폰, 당시 십 대들 사이에 유행하던 아이템을 얻어내기 위해 최초의 그녀가 끈질기게 요구하고 투쟁하여 결국에 얻어내면, 이후의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하고 받았다. 최초의 그녀의 관심이 옮겨 가고 나면 남겨진 물건들이 고스란히 이후의 그녀의 앞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둘째인 그녀가 청소년의 시간을 하이텍으로, 옷 잘 입는 아이로 건너오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존재는 얼마나 고유한가! 길고 긴 참조의 시간을 휘돌아 지금에 이르러서도 둘은 참으로 다르다. 최초의 그녀가 뜨겁고 화려하다면, 이후의 그녀는 차갑고 소박하다.   


그런데 이곳이 변곡점인가? 40이라는 숫자를 가운데에 두고 최초의 그녀와 이후의 그녀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눈도, 코도, 입도 다른데 웃으면 닮았다. 즐겨 쓰는 어휘도, 말의 속도도, 높낮이도 다른데 소리가 닮았다. 고요함과 떠들썩함의 시간들을 고루고루 두루두루 관통한 자들이 평균으로 회귀하는 시점인 것일까? 최초의 그녀와 이후의 그녀가 앞으로 그려나갈 그래프  곡선의 추이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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