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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n 05. 2021

커다란 창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어. 코발트블루색 하늘 아래에 작은 호수 하나, 호수 위로 붉은색 석양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 넓은 공터에 세워진 어느 신축 콘도의 발코니 위였는데, 그곳에선 나무의 맨살 냄새가 났어.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경쾌하지만 달기만  콜라 같은 모임이었어. 늘어지게 포만감을 주지만 먹고 나면 속이 느끼한 피자 같은 자리였어. 나만 그런  아니구나, 나보다 사교적인 리사도 웃음을 지어 보이긴 했지만 번번이 웃음소리에 조금  미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어. “Chop, Chop, Chop! We are in America!” 불편함인지 실패감인지 모를 것을 꾸역꾸역 씹어 넘기는 중이었어. 그때 공간의 빛이 달라졌어.  ,  가구, 플라스틱 접시와 포크에서 풍기는 차가운 냄새를 모두 눌러 버릴 만큼 묵직한 어둠.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어.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어. 작은 호수 하나, 코발트블루색 하늘로 피어오르는 붉은색 석양을 바라보면서.    


어제 남편과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를 봤어.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밤,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소파의 양 끝에 기대앉아서. 사실 난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라고 해서 쉽게 감동하거나 갈채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하는 마음이었어. 그러고 보면 내 심보도 참 이상하지? 큰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게 될까 봐 품은 방어기제였는지도 몰라. 그런데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Ludovico Einaudi 음악이잖아.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영화를 봤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면, 그 구멍은 메워지지 않고 창이 되는 것 같아. 바람이 들고 빛이 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욱 투명하게 담는 창.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면 또 얼마나 절절하게 추위를 품는지 모르는 창. 나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이 묘하다고 생각해왔어. 내 안의 창에 쓸쓸함과 오소소한 추위와 아름다움을 함께 담는 얄궂은 음악이었거든. 즐겨 들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야.


그래서였던  같아. 나에게 노매드랜드는 클로이 자오 Chloé Zhao 감독이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음악에 장면을 부여 뮤직 비디오 같았어. 나는 나의 장면들을 떠올렸어.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공존해서 와아앙 울어버릴 수도 없었던 날들의 풍경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소파 끝에 기대어 한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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