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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n 07. 2021

새 스케치북

노쇼 백신 접종 이후에 ‘너무 오랜만’인 일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시도해보고 있다. 어제는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 교보에 갔다. 각자 둘러보고 책을 한 권씩 사기로 했다. 모두 신중해진 눈치다. 벌써 책을 한 권씩 골라 품에 안고 다니던 아이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부산스러워진다. 품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새로 발견한 책을 향해 나아간다. 어느 책이 더 나을 것 같은지 서로의 의견을 묻고 답한다. 책 욕심 많은 남편은 코너마다 돌면서 신간 매대 쪽을 살핀다. 휙휙 지나쳐 가는 것을 보니, 끌리는 책을 찾으면 전자책으로 사서 읽고 꼭 소장하고 싶은 경우에만 종이책을 주문하는 평소의 방식을 고수할 눈치다. 


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한 나는 원서 예술 코너로 갔다. 도서 진열대 가득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집이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마크 로스코, 헨리 마티스, 마리아 칼만,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 우와, 데이비드 호크니 할아버지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 'Drawing from Life’, ‘The Arrival of Spring in Normandy’, 데이비드 호크니 40주년 기념판 등 그 사이 책을 정말 많이 내셨다. 황홀함이 넘실댄다. ‘아, 아름답다! 소유하고 싶다!’ 묵직한 화집을 한 권씩 들었다 놓았다 뒤쪽에 적힌 가격을 확인한다. 살까, 잠시 망설이다가 마음을 접는다. 한 권을 고를 수가 없다. 대신 작품집의 표지를 한 권, 한 권, 손으로 쓸어본다. 표면의 감촉이 다 다르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 좋다. 


그렇게 매대를 뱅글뱅글 돌다가 한쪽 구석에서 스케치북을 발견했다. 검은색 양장 제본 스케치북이다. 샘플을 펼쳐보니 바인딩이 평평하게 활짝 열리는 형태다. 펼침면 좌우로 하나의 연결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종이의 두께가 비침 없이 두툼하고, 매수도 96매로 넉넉하다. 가격도 적당하다. 마음에 꼭 든다. 한 권 집어 들다가 매대에 남은 마지막 한 권을 더해 두 권을 집어 든다.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스케치북은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두 권의 스케치북을 품에 안고나니 그토록 마음을 설레게 하던 화집들도 더 이상 탐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이 두 권의 스케치북을 다 채울 때까지는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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