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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n 09. 2021

잠봉뵈르 샌드위치

맛과 기억

바람 불고 구름 낀 어느 평일의 오후, 정기 점검을 위해 차를 서비스 센터에 맡기고 나오는 길이다. 기다리는 동안 달리려고 했는데  출출하다. 아이들이 ‘상어 카페’라고 부르는 -그곳에 상어가 산다- 큰 규모의 유명 빵집으로 들어선다. 입구의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린다. 마주한 곳에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비누로 싹싹 씻고 매장의 오른편으로 향한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빵들을 차례로 살핀다. 먹고 나서 달리기를 해야 하니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이어야 한다. 느끼하지 않으면서 풍미가 좋은 빵이면 좋겠다. 머핀이나 카스텔라는 너무 달고, 멋을 낸 페이스츄리나 피자빵 말고, 식사빵류는 먹다 남으면 들고 다녀야 해서 안  되고. 폭이 좁은 테이블 끝으로 바짝 붙어있는 냉장 진열대 안을 들여다본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차가운 샌드위치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걸음을 떼며 고개를 드는데 냉장 진열대 옆으로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 잠봉뵈르’라고 적혀있다. 15cm 정도 길이의 바게트 안에 버터 슬라이스를 올리고 잠봉이라는 햄을 겹겹이 접어 넣은 샌드위치였다. 야채가 없어서 아쉽지만 맛이 궁금하다. 샌드위치를 집게로 집어 쟁반 위에 올린 다음 계산대로 간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주문할까 하다가 물만 한 잔 떠서 건물 밖으로 나간다. 테이블이 여러 개 놓인 야외 공간이 텅 비어있다. 날씨 탓인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고 벤치에 앉는다. 엉덩이와 등 부분에 이국적인 문양의 타일이 붙어있는 붉은색 벤치에는 팔걸이라고 하기에는 넓고, 테이블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판이 붙어있다. 그곳에 물 잔을 올려두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 파사삭, 으흠, 고소하다. 한 입 더 베어 문다. 흐뭇하고, 간지럽고, 만족스럽다. 이따금씩 물로 목을 축이며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먹는다. 오롯하다. 커피를 주문하지 않길 잘했다. 


먹으면서 아이들을 생각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바게트를 유난히도 좋아한다. 바샤샥, 바샤샥, 나는 아이들이 바게트 먹을 때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오래전 여럿이 함께 먹었던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생각한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파티,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난 아침이었다. 몇몇이 둘러앉아 미니 크로와상을 반으로 가르고 잼과 버터를 바른 다음 하몽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갓 내린 커피와 함께. 함께 맞는 아침이 신선했고, 느긋했다. 일뎀을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 당근 머핀과 머핀 위에 올려먹을 계피향이 은은한 버터크림을 만들어줬다. 미국에서 인턴을 마치고 독일로 간다고 했는데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잠봉뵈르', 이름도 낯선 샌드위치가 익숙한 얼굴들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소환한다. 트더덕 트더덕, 차양막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까치다. 까치 두 마리가 놀이 비행을 한다. 놀고, 먹고. 재미를 탐하는 존재와, 맛과 향을 탐하는 존재의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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