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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n 11. 2021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글

달린다. 마스크 안쪽에 숨이 차오르고 땀이 맺힌다. 

오늘은 곳곳이 작은 물웅덩이다.

신발이 젖지 않게 살피며 달린다.

비스듬히 들여다본 웅덩이에

하늘과 나무와 바람이 담겨 흔들린다. 

밤새 내린 비의 작품이다.


웅덩이가 마주침을 만들어 낸다.

처음에 마주친 얼굴은 우리 이모를 닮았다.

관절이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던 우리 이모,

나는 그 얼굴이 가까워지기 전에 웅덩이 쪽으로 몸을 튼다. 

제가 저희 반에서 제자리멀리뛰기 일등이었어요.

크게 발돋움하며 웅덩이 저편으로 뛴다.


이번엔 뒷모습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뒷모습이 내가 아는 누군가의 것과 닮았다.

브래지어 끈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살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걷는다.

안기면 마음이 푹 놓일 것 같은 몸이다. 

긴장감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또 한 번 웅덩이 너머로 뛴다. 


힘을 빼고 달리다 

힘주어 뛰어넘기를 반복한다.

마주치고 떠올리다  

오른쪽 발목이 아파온다. 

산책로를 빠져나오다가 

사이클을 타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가지 마요, 했다가

같이 가요, 하고 싶어 진다.


이곳과 저곳에 닮은 꼴들이다.

이제 이곳에 없는 존재들의 

기억을 스치며 나는 오늘도 달린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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