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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n 14. 2021

붕어빵 이천 원어치


오전 아홉 시, 신호등을 건너 아이의 유치원이 있는 단지로 들어서는 참이었다. 이삼십 미터 남짓 떨어진 수위실 창문 너머로 수위 아저씨 한 분이 무언가를 들고 서계신 게 보였다. 가볍지만 떨어뜨리면 안 되는 무언가 인 듯했다. 시선을 슬쩍 옮겨 그 무언가를 봤다. ‘붕어싸만코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를 낼 뻔했다. 아이들과 새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이후 생긴 버릇이다. 사물의 실체를 확인하면 그것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어 진다. 아저씨가 양손으로 받쳐 든 붕어싸만코가 휘어진다. 저게 잘릴까,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데 어느새 둘로 나뉜 붕어싸만코가 아저씨 손에 하나, 아저씨와 꼭 같은 유니폼을 입은 다른 아저씨 손에 하나, 들려진다.


맞다. 붕어빵은 나누어 먹어야 제 맛이다. 꼬리 쪽을 좋아하는 사람과 머리 쪽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이좋게 반반. 초여름도 아니고 그냥 여름날 아침, 방금 갈아입은 옷의 보송함을 유지해보려고 애쓰다가 붕어빵 생각에 사로잡혔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통팥이 든 붕어싸만코도 맛있지만, 붕어빵은 따뜻한 게 진짜다. 겉은 바삭하게 익었는데 안쪽 풀빵은 촉촉하고 적당히 달콤한 팥앙금으로 꽉 찬 붕어빵. 꼬리 쪽을 선택한 사람이나 머리 쪽을 선택한 사람이나 공평하게 그득그득 배부른 붕어빵. 그런 기막히게 맛있는 붕어빵을 우리 동네에서 판다. 물론,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겨울 한 철, 그것도 해질 무렵에 잠깐만 판다. 그래서 호주머니에 이천 원쯤은 꼭 챙겨 가지고 다녀야 한다. 천 원어치, 이천 원어치, 꼬맹이들과 손에 하나씩 들고 호호 불며 집에 가는 길에 먹을 만큼 딱 그만큼만 사야 한다. 욕심부렸다간 종이봉투 안 붕어들이 녹아버린다. 카드 지갑 사이에 착착 접어 끼워둔 5만 원짜리 지폐를 죄송스럽게 꺼내 들던 날, 붕어빵 아저씨는 처음으로 웃었다. 목장갑을 끼고 쇠꼬챙이로 붕어 모양의 틀을 뒤집다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커다란 우윳빛 플라스틱 통을 꺼내 보였다. 그 안에는 지폐가 가득했다. 자부심으로 빛나던 얼굴, 그 얼굴을 보는 내 마음까지 뿌듯해졌다. 황금빛 붕어빵과 그걸 만드는 아저씨의 자부심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나는 그 어울림이 좋았다. 단지 사이 산책로 주변을 지날 때면 붕어빵 수레가 있는지 살폈다. 수레를 만나면 붕어빵을 샀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친구와 친구 엄마들에게 맛을 보이기 위해 사고, 일과를 마치고 출출한 시간 유치원 선생님들을 위해서도 사고, 식어도 다시 데우면 그 맛이 살아나지 않을까 퇴근이 늦은 남편을 위해서도 샀다. 매번 붕어빵이 식을까 봐 품에 넣고 뛰었다.


2020년 거짓말처럼 일어난 코로나 팬데믹, 봄, 여름, 가을 가고 겨울이 되었지만 꼼짝없이 집이었다. 무서워서 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사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입이 궁금하던 어느 저녁, 나는 큰 맘을 먹고 지갑에 이천 원을 챙겨 산책을 나섰다. 세상이 어리둥절한 나와는 무관하게, 같은 자리에 붕어빵 수레가 서있었다. 괜찮을까, 괜찮을까, 온통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묵묵부답이었다. "아저씨, 붕어빵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여전했다. 마스크를 야무지게 올려 쓴 아저씨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가락으로 돈통을 가리켰다. 이천 원을 작은 상자 안에 쏙 넣고 기다렸다가 붕어빵이 담긴 봉투를 받아 들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방역수칙 이런 거 너무 잘 지키는 스스로에 대하여 백만 스무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이 분은 나보다 더했다.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까지 그랬다. 그날 일을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난다. 그나저나 붕어빵 아저씨는 여름엔 뭐 하시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 떠오른다. 몸이 조금 불편하신 분인데… 막연히 걱정이 된다.


아저씨,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올 겨울에는 모든 상황이 좋아져서 아저씨가 돈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자랑하는 거 또 듣고 싶어요. 아저씨가 덤으로 주는 붕어빵도 얻어 먹고요. 아저씨, 아저씨 붕어빵은 정말로 기가 막히게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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