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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Apr 19. 2022

문화적 경험의 완성

서산 중식당 ‘강미루’

팬데믹 이전에는 여럿이 어울려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주말이면 함께 소풍을 가고, 여행을 다. 함께 어울려 먹고 놀았다. 그리고 종종 비빌 언덕이 되어주시는 선생님 댁에 우르르 몰려가 지지와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 먹이셨는데 어린 부모였던 우리는 생님이 내오시는 따뜻한 요리를 아기새처럼 받아먹었다. 감바스, 하몽 샌드위치, 완탕 수프, 파스타와 굴요리, 스크램블드 에그, 종류도 다양했는데, 모든 요리가 훌륭했고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감흥이 커서  번인가집에 돌아와 같은 요리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실패의 원인은 여럿일  었겠지만 남편과 내가 찾은 가장  원인은 선생님이 요리를  들려주시던 이야기였다. 먹는 행위를 문화적 경험으로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주중에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태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이었다. 남편은 수목원 가는 길에 ‘강미루라는 특별한 식당을 찾았다며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예약을 했다.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사실상 그곳에서의 식사가 여행 첫째  우리들의 유일한 일정이었다. 식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산책했다. 식당 바로 옆으로 양유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을 구경했다. 수령이 300-400년가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느티나무. 바라보는 것만으로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하는  거대한 몸에 연둣빛 새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언젠가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청요리집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셰프님의 안내를 받아 이층 별실에 자리를 잡았다. "생동감 넘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차를 내며 셰프님은 말했다. ‘생동감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따뜻한 우롱차를 마셨다. 그러다 종이 테이블 매트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그곳에는 ‘' 있었다. 여느 식당에서 흔히 보는 광고 문구가 아닌,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식당이 위치한 '서산의 이야기' 중앙에 두고 '식당의 역사' ‘음식과 식재료를 대하는 5가지 원칙 좌우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50도씨 세척법, 90도씨 호화 반죽법, 무방부제, 무인공 감미료,  나트륨 조리법,  유분 조리법, 신선미 육수. 외국어보다도 낯설게 느껴지는 낱말들이었다. 생경한 낱말들은, 식탁 위에 올려지는 요리를   베어  때마다 향으로, 색으로, 맛으로, 그리고 질감으로 생생하게 경험되었다. 여기에 더해, “때는 19세기, 정보정이 사천성 총독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요리를 앞접시에 소분해주며 셰프님의 이야기가 곁들여지자, ", 진짜 맛있다. 맛있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어른들의 얼굴에미소가 졌다.  안이 밝고 따뜻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떤 완성 경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건강한 중국요리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 3대에 걸친 그들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끼의 식사문화적 경험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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