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너 착한 아이 컴플렉스 있니?
살갗에 박힌 하나의 말은 오래 두고 날카로운 감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며 검열을 해보았지만 번번이 외면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슬픔과 고통 주변을 서성이다 넘어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쩌자고 감당도 못할 이런 마음이 떠오르는 것인지, 정말 착한 아이 컴플렉스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꾸짖고 책망하는 날이었다.
비스듬히 기대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렁그렁한 내 눈을 들여다보시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들썩이는 마음을 가만히 쓸어내려주셨다.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날, 주변을 돌아보니 그의 마음도, 그녀의 마음도 잔뜩 흐리다. 슬픔이, 기대어 살아가는 마음과 마음에 스미어 짙은 먹구름을 드리운다. 그러나 그래서 우리 더욱 받치고 있을 것 같다. 느슨하지만 공고한 비스듬히로.
(휴일 아침 ‘2018 내 페이스북 게시물’을 스크롤하다가 발견한, 2018년 어느 봄날의 쌍둥이 일기.)
마음이 자꾸 이는데 그 마음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살피느라 여러날을 보냈다. 그때 그때 반응하며 살아와놓고는
새삼스레 마음 살피느라 좀 앓았다.
맞다. 나는 감정이입이 잘 되는 사람이다. 마주앉은 이의 슬픔 속에 얼른 함께 들어가 앉고 수화기 너머 분한 이야기에 속이 시끄러워 밤잠 설치는 사람,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에도 휘청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럴 때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마음이 먼저 이는데, 그 마음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서른하고도 몇해를 더 살고나서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상상만 할 뿐, 결코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큰 슬픔에 빠진 가정의 이야기를 듣고 자꾸만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마음은 뇌야!'라고 알려줘도 심장 어디께가 단단하게 뭉치고 아팠다. 정말이지 착한 아이 컴플렉스인걸까? 내 안에 이는 마음이 너무 얄팍한 것 같아서 얼마쯤은 천박한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러다가 두 단어를 만났다. '공감', 그리고 '기적'. 보송보송하고 폭신폭신하고 따뜻하지만 가벼운- 나와 그것 사이에 얼마간의 공간을 허락하는, 경량 거위털 이불 같은 '공감' 말이다. 슬퍼도 슬픔만을 강요하지 않는 '공감'. '이입'이 아니고 '공감'이라면? 맑게 눈물 흘리고 설핏 웃으면서
'기적'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절대로 앞장서서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아닌데, 살짝 발만 걸쳤다가 빠지는 사람인데, 여럿이 하는 일보다는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인데, 장담컨대 이런 일엔 젬병인 나인데... 거위털 이불 돌돌 말았더니 자동변신이다.
익숙하지 않은 렌즈를 끼고 무리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생경한 경험이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우리의 작은 마음들이 공명한다.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이는 마음의 정체를 몰라 서성이지만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이 예쁜 반짝임을 놓칠리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