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환경공무관의 하루
내 생일은 겨울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생일을 맞이하는게 익숙하다.
어릴 때는 눈 오는 생일이 좋았고,
지금은 그냥 "아, 또 한 살 먹었구나"정도로 지나가고 만다.
요즘은 생일도 조용하다.
케이크에 불 붙일 일도 예전만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거리에서 케이크 박스가 많이 보였다.
케이크 박스는 깨끗한 종이가 아니다.
기름이 배어있고, 크림자국도 남아있다.
그래서 박스로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정성스레 접지도 않고, 수 많은 박스와 함께 밟아버린다.
그게 내 일이다.
구겨 넣고, 묶고, 치운다.
그런데 케이크 박스를 밟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구겨버리는 이 박스가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담고 있었겠구나.
초를 꽂고, 사진을 찍고, "소원은 말 안하는거야"같은 말을 하며,
케이크를 자르며, 잠깐이나마 웃고 있었을 그 장면 말이다.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사람은 평소엔 무관심하다가도 관심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보이기 시작한다고.
특정 SUV를 사고 싶어지면 거리엔 그 차 밖에 보이지 않고,
최신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지면 유튜브에 하루 종일 검색하고
그걸 들고 있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오늘 나에게는 케이크 박스가 그랬다.
평소 같았으면, "또 이렇게 막 버렸네"하고 한숨부터 나왔을텐데,
오늘은 "아, 누군가의 기념일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 사람들이 여전히 밉기는 했다.
하지만 그 케이크박스로 누군가는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겠거니 생각하니 화가 조금 덜 났다.
묘하게도 마음이 한 박자 느려졌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같은 상황인데,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왜 이렇게 버릴까
왜 이렇게 힘들까
같은 생각이 자꾸 쌓인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연습을 한다.
조금 덜 날카롭게 생각하는 연습,
조금 덜 화내는 연습,
조금 더 사람 쪽으로 생각하는 연습이다.
오늘의 케이크 박스는 그 연습 문제 같았다.
나는 오늘도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면서
생각을 건강하게 하는 연습을 했다.
내 생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하루를 잘 보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