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박스를 정리하는 미화원

30대 환경공무관의 하루

by 삼스클


내 생일은 겨울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생일을 맞이하는게 익숙하다.


어릴 때는 눈 오는 생일이 좋았고,

지금은 그냥 "아, 또 한 살 먹었구나"정도로 지나가고 만다.


요즘은 생일도 조용하다.

케이크에 불 붙일 일도 예전만큼은 많지 않다.

900%EF%BC%BF1770114211863.jpg?type=w773

그런데 오늘은 유독, 거리에서 케이크 박스가 많이 보였다.


케이크 박스는 깨끗한 종이가 아니다.

기름이 배어있고, 크림자국도 남아있다.


그래서 박스로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정성스레 접지도 않고, 수 많은 박스와 함께 밟아버린다.


그게 내 일이다.

구겨 넣고, 묶고, 치운다.


그런데 케이크 박스를 밟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구겨버리는 이 박스가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담고 있었겠구나.
900%EF%BC%BF20260203%EF%BC%BF073630.jpg?type=w773

초를 꽂고, 사진을 찍고, "소원은 말 안하는거야"같은 말을 하며,

케이크를 자르며, 잠깐이나마 웃고 있었을 그 장면 말이다.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사람은 평소엔 무관심하다가도 관심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보이기 시작한다고.


특정 SUV를 사고 싶어지면 거리엔 그 차 밖에 보이지 않고,

최신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지면 유튜브에 하루 종일 검색하고

그걸 들고 있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오늘 나에게는 케이크 박스가 그랬다.


평소 같았으면, "또 이렇게 막 버렸네"하고 한숨부터 나왔을텐데,

오늘은 "아, 누군가의 기념일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 사람들이 여전히 밉기는 했다.


하지만 그 케이크박스로 누군가는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겠거니 생각하니 화가 조금 덜 났다.

묘하게도 마음이 한 박자 느려졌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같은 상황인데,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왜 이렇게 버릴까

왜 이렇게 힘들까

같은 생각이 자꾸 쌓인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연습을 한다.


조금 덜 날카롭게 생각하는 연습,

조금 덜 화내는 연습,

조금 더 사람 쪽으로 생각하는 연습이다.


오늘의 케이크 박스는 그 연습 문제 같았다.


나는 오늘도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면서
생각을 건강하게 하는 연습을 했다.
내 생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하루를 잘 보낸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담배꽁초와 몽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