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생태학자가 뭔가요?
어느 날 의료 생태학이 뭐냐며 문의를 주신 분이 있다.
병원에서야 비뇨의학과 전문의라고 하지만 외부 활동 시에는 항상 의료 생태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해서였다.
이 말이 뭔가 있어 보여서 쓴 말은 아니다.
의료 생태학자라고 스스로 칭하는 것은 더 큰 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증상’이라는 현상에 주로 집중하고 그 증상을 조절하는 것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소변이 잘 안 나오면 전립선 크기를 줄이거나 요도 압력을 낮추는 약을 쓰고, 배뇨 횟수가 많아지면 방광의 민감도를 줄이는 약을 사용한다. 이 같은 방식은 마치 나뭇잎이 마른 이유를 물의 부족이나 햇빛의 과잉으로 보지 않고 말라버린 잎만 잘라내는 것과 같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뭔가 좀 더 근본적인 것 말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과연 내 몸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충분한가?'이다.
현대 의학은 종종 질병을 대사 경로의 어디선가 발생한 오류나 고장으로 간주하고 이를 교정하려 든다. 인슐린의 분비가 줄어들면 약으로 이를 자극하고,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 보이면 SSRI나 도파민계 약제를 투입한다. 이처럼 복잡한 대사 과정의 중간 단계에 개입하여 이를 조작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그 기전을 떠받치는 기본 물질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그 기본이란 바로 미세 영양소들 특히 미네랄이다.
미네랄은 단순한 보조 영양소가 아니다.
그것은 주기율표에 이름을 올린 생명 유지의 기본 단위이며,
전기적 흐름과 대사 반응의 매개체이자
신경과 호르몬의 작동을 위한 근본적인 생화학적 조건들이다.
즉, 미네랄은 몸이 스스로를 유지하고 치유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기반인 셈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방광의 근육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요로의 원활한 수축·이완이 어려워진다.
칼륨이 부족하면 신경의 전기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잔뇨감과 방광 불쾌감이 나타날 수 있다.
아연과 셀레늄이 부족하면 전립선 조직의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며 만성 염증 상태를 유발한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알파 차단제, 베타 작용제, 5α-환원효소 억제제를 써봐야
물적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작용의 지속성도, 회복력도 한계가 명확하다.
면역력도 마찬가지이다. 싸울 수 있는 군수물자 자체가 부족한데 어떻게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이겠는가? 이 것은 한의학이든, 서양 의학이든, 그 어떤 의학이든 간에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너무 당연한 질문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내 몸을 이루는 재료들, 즉 미네랄과 필수 영양소들은 충분히 채워졌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에야
약물 치료든 수술이든 그다음의 논리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삶을 묻는 이유는 단순히 '생활습관 교정을 위한 계몽'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삶이라는 ‘숲’을 조망할 수 있어야 어떤 '나무(증상)'가 왜 아프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만 환자가 보이는 증상의 이유를 알 수 있고 치료가 가능해진다.
15년간 환자를 진료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능적인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보다 앞서 발생하며 그 배경에는 항상 미세 영양소의 부족, 에너지 대사의 정체, 그리고 전기 신호의 왜곡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요로 결석의 경우 신장에서 작은 씨앗돌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미 기능적인 문제들이 나타난다.
체내 미세 영양소가 고갈되면 미네랄 대사 불균형이 나타난다. 미네랄들은 신장 기능, 소변 농도 조절, 산염기 균형 유지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미네랄들이 만성적으로 고갈되면 몸은 이를 보상하려는 적응 반응(adaptive response)을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반응 중 하나가 바로 수분 섭취에 대한 억제, 혹은 수분 보존을 통한 농도 유지 전략이다.
희석된 환경에서 더 많은 미네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은 소변량을 줄이고 탈수를 유도하면서라도 체내 미네랄 농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 분들은 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거나 자연스레 원치 않게 된다.
대개 몸은 수분 섭취를 제한하여 체내 미네랄 농도를 올리려고 한다.
수분 섭취가 부족해지면 몸의 곳곳에서 탈수에 의한 스트레스로 각 조직에서의 미네랄 고갈은 더욱 악화되고 에너지 고갈도 심해진다. 자연스레 몸에 기운이 없다고 느낀다. (물과 미네랄은 곧 에너지이다!!!)
몸은 생체 전자기기와 같다. 전기가 통해야지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탈수가 일어나고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이 생기면 가장 기본적인 농도 기울기가 생성되지 않고 따라서 생체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압이 약하면 형광등이 깜박거리고 빛이 어두운 거처럼 우리 몸의 전압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몸의 오작동이 일어나거나 급작스럽게 멈춰 버린다. (여러분의 기억력이 깜박거려서 치매를 의심하기 전에 여러분의 몸에 충분한 수분과 미네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수분 섭취가 줄어들고, 소변량이 감소하면 소변 내 미네랄 농도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이는 곧 포화도(supersaturation)의 증가로 이어진다.
결국 옥살산칼슘, 인산칼슘, 요산 등의 미네랄이 용해 상태에서 결정체(crystal)로 바뀌기 시작한다.
씨앗돌은 그렇게 형성이 되어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바뀐다.
우리가 대개 피곤하다고 느끼는 기능적인 문제가 어떻게 결석이란 구조적인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결석이 발생하는 요인으로 소변의 산도가 지나치게 산성이거나 알칼리성일 때도 문제가 된다. (소변의 산도 역시 전압과 관련이 된다.) 소변을 잘 보지 않고 참는 것 역시 위험 요소다. 신장 내 미세한 염증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강조하건대 이 모든 문제들은 앞서 언급한 '재료가 충분한가?'로부터 모두 파생되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가 비단 요로 결석의 문제에만 국한될까?
감히 답하건대 생명체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고 확신한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과정을 보면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분업화와 전문화로 이루어진 작업의 단순화와 편리함
이 효율성의 극치는 아름답기까지 해 보인다.
이런 시스템은 모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병원에서도 이런 시스템으로 환자를 보면 좋다 여겼는지 모른다.
대학 병원과 종합 병원에 지금과 같은 여러 분과가 나온 배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시스템은 의료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질병의 단편적 이해, 분절된 진료 시스템, 증상 중심의 치료 패러다임은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결여하고 있다. 바로 생명의 전체성(Holism)이다.
이 전체성을 고려한 접근이 바로 의료 생태학(Medical Ecology)이다.
의료 생태학이란 인간의 건강을 생물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영양적, 생활 습관 요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의학적 접근 방식이다. 즉, '환자'를 단순히 ‘질병을 가진 개체’가 아닌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여기서는 단순히 '병'만 보지 않는다.
그 병이 어떤 '토양'에서 자랐는지를 보게 된다.
그 ‘토양’이 바로 그 사람의 미네랄 상태, 식이습관, 수면 리듬, 정서적 스트레스, 인간관계, 직업환경, 운동 습관 등 삶 전체의 환경적 조건들이다.
그 결과를 만들어낸 토양의 상태, 즉 ‘몸과 삶의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치료는 '잠시의 회복'에 그칠 뿐이며 반복과 재발을 피하기 어렵다.
즉, 생리적 기능 하나하나가 주변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기반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먹는 것,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느끼는 감정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바로 의료 생태학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계처럼 고쳐지는 의학에서 생명 자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의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료 생태학은 의사에게는 ‘전체를 보는 안목’을 환자에게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일깨워줄 것이다. 진단과 처방 중심에서 벗어나 질문하고 듣고 이해하는 의학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증상의 억제에서 벗어나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회복하는 의학으로, 그리고 질병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건강 생태계를 복원하는 의학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환자에게서 질병만 보아 왔다. '환자들' 역시 너무 질병 자체에 혈안되어 마치 뭔가 진단명이 나오면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없애거나 정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립선암이 있는 환자에게서 암 치료를 잘해서 암은 완벽하게 제거했지만 한 달 뒤에 그가 삶을 달리 했다면 수술을 한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일이 비단 비뇨의학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암화학/방사선 요법으로 암을 잘 치료했지만 환자는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가고 삶의 질이 바닥을 치게 된다면 치료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암이 없어지기만 하면 그간 그가 잃었던 생기를 되찾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이제는 그 질병이 뿌리내리고 있는 ‘삶의 생태계’ 전체를 볼 때다.
우리의 몸은 회복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 저절로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러분의 몸이 좋지 않다면 우선은 여러분의 몸에 의구심을 갖거나 책망하기 전에
내가 있는 환경이 균형이 잡혀있어서 내 몸이 회복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그 환경이라 함은 미네랄 상태, 식이습관, 수면 리듬, 정서적 스트레스, 인간관계, 직업환경, 운동 습관 등 삶 전체의 환경적 조건들이다.)
스스로 이런 몸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의사가 행하는 수술적 치료도 약물 치료도 그 빛을 발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치유는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 과정을 잠시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하다.)
의료 생태학은 단순한 통합의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체로서의 인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철학이자 방향성이다.
이제 진료실에서 우리는 이렇게 묻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무엇이 당신을 아프게 만들었는가?” 보다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마침내 병이 아닌 사람 자체를 진정으로 치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