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아이 몫, 감정은 가족 몫

딸의 진심, 엄마의 노력, 아빠의 한마디

by 빛나볼게요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보다 다니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을 거다.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최소한 우리 동네 기준으로는 학원 안 다니는

아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정도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나름 애썼다.

‘애를 너무 일찍부터 등 떠밀지 말자.

학원이 전부는 아니니까.’

스스로 그렇게 다짐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이가 먼저 말했다.


“엄마! 나 영어는 이제 학원 다니고 싶어!”


순간 멈칫.

그래서 이유를 물었다. 왜 갑자기?


“친구들도 거의 다 다니고…

나도 학원 가서 배우면 실력이 더 좋아질 거 같아!”


흠. 이건 나름 기특한 이유였다.

적어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아니라,

배우고 싶어서라는 말이 먼저 나온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 정도의 동기면 한번 믿어볼 만하지.

나는 곧장 움직였다.

학교 끝나는 시간 체크하고, 요일 맞춰보고,

위치 따져보고, 교재 확인하고, 후기도 보고…

며칠을 바쁘게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아이가 원한

영어학원에 등록 완료!


스스로 가고 싶다며 시작한 학원이라 그런지,

처음엔 참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숙제.

숙제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걸 안 하겠다고 드러눕고 질질 끌기

시작하면 엄마 속은 타들어간다.


“먼저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준 학원인데,

그럼 숙제까지 책임지고 해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는 몸을 베베 꼬면서 책상에 앉는다.

손은 느릿느릿, 눈은 멍… 그러다 갑자기

“물 마시고 올게!” “화장실 다녀올게!”

숙제 몇 개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기분이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끼어든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학원도 가지 마~”


하… 그 한마디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내가 그 학원 하나 알아보느라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데.

애가 얼마나 진심으로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로 그냥 모든 게 가볍게 퉁쳐진 느낌이다.


그러자 아이가 울먹인다.

“내가 언제 안 다니고 싶다고 했어…?”


그러면 나는 또 옆에서 참다못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럼 이런 얘기 나오지 않게 네가 알아서 숙제도 하고 자기 할 일 똑바로 해야지!”


이런 날들이 반복된다.

누구 하나 달라지는 사람은 없는데,

매번 똑같은 대화, 똑같은 감정들이 반복 재생된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딸은 학교생활을 나름 잘 해낸다.

이것저것 콘테스트에서 상도 종종 받아온다.

영어, 수학, 미술… 도대체 학교가 상을 많이 주는 건지, 얘가 진짜 잘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지만 아무튼 잘도 받아온다.


그렇게 상을 받아오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남편이다.

아닌 척하면서, 사실은 나보다 더 신나서

아이보다 더 좋아한다.

그리고는 또 말한다.


“맨날 징징댈 거면 학원도 가지 마~ 공부도 하지 마~”


… 그걸 또 들어야 한다.

하루는 열심히 하고, 하루는 미적거리고,

하루는 짜증 내고, 하루는 상 받아오고…

그 모든 날들의 감정이 셋 각자 다 다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겪지만 느끼는 건 늘 다르다.


그러니까… 셋이 같이 산다는 건, 서로의 감정을 ‘똑같이’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정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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