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디지털이 야기시키는 근원적 불안

by Chet


1. ’우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이러한 의미로 나온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어떤 사물이 인과율에 근거하지 아니하는 성질> 그렇다면 ’인연‘은 어떨까.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이라고 나와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우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첫 장면인 나영과 해성 그리고 그 옆에 아서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제삼자의 시선, 즉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의 시점으로 바라보는데 자연스레 관객도 그 제삼자의 말처럼 그 3인 중에서 과연 누가 커플인지, 혹은 누가 친구인지를 자연스레 추측하게 된다. 이는 영화의 중요한 부분인 우연과 인연에 대한 선택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2. 세대가 변해가면서 이제는 수천 마일이 떨어진 곳과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가 되었다. 해성과 나영은 우연히 시작된 비대면 화상통화를 통해 헛된 꿈을 꾸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직접적으로 볼 수 없음에, 직접 다가갈 수 있음에도 디지털이 야기시키는 근원적 불안으로 인해 서로 주저하고, 지레 겁을 먹고 멈춰 서게 된다. 이는 어쩌면 우연과 인연의 선택에서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이 체감해야 할 당연한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들이 각자 생각했던 혹은 자신들도 모르게 같이 바라왔던 부풀려진 수많은 상상 속의 대안 세계는 어쩌면 야속하게도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3막인 뉴욕에서 늦게 재회하게 된, 이제 더 이상 나영이 아니게 된 노라와 아서 그리고 해성의 이야기는 멈춰진 관람차가 멀리서 보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이, 불이 꺼져서 더 이상 회전하지 않는 회전목마가 괜히 아쉬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무너져버린 노스텔지어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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