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하나
더운 여름날 그는 K와 울산에서 보았다. K가 울산에 오게 된 계기는 마음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그가 시작한 산책 때문이었다. 그는 종이 위에 그려놓은 펜 자국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주위로만 걸음을 내딛는 개미처럼 계속해서 o자를 그리며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았다. 그러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성인이 된 이래로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던 동헌東軒의 존재를 3바퀴를 돌 때쯤 알게 되었고, 페로몬을 맡은 듯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헌의 내부는 신기하게도 10년이라는 세월에서 빗겨나간 듯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었고, 오히려 관사館舍안에 새롭게 놓인 조선 관리의 시복을 입은 마네킹 때문인지 이 공간은 오히려 거꾸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는 그런 동헌의 부분 부분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 바로 K에게 보내주었다. 사진을 본 K는 동헌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에게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K가 울산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날은 정말이지 길었던 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동헌뿐만 아니라 병원에도 같이 갔었다. 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K의 화장실을 자주 들리는 습관 때문이었다. K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많았었는데 그는 때때로 K에게 “내가 간이 화장실을 끌고 다녀야겠다. 차라리 그래야 편할 것 같아”라는 식의 말을 장난이랍시고 툭툭 내뱉었다. K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장난으로 받아쳤지만, 점점 K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졌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뒤로 그는 화장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K의 모습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눈치 없이 계속 놀렸나? 기분 좀 풀어라.” “이제 진짜 안 놀릴게.”
그의 말을 들은 그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병원을 가봐야겠어.”
“병원이라니?”
“아니. 갑자기 걱정이 돼서, 화장실을 자주 가는 이유가 건강이 안 좋아서 그런가 싶더라고.”
“그리고 네가 말해준 바다가 보이는 병원 식당이 있는 병원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는 병원 식당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전에 K에게 바다가 보이는 병원 식당을 이야기했었다.
“병원 식당에서 혼자 조용히 의무적으로 밥을 먹고 있었어.”
“어떤 밥?”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 카레라이스였던 거 같다. 어쨌든 밥을 먹는데 나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식당에 창문이 있는지조차 몰랐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벽에서 노란색 빛이 새어드는 거야. 그래서 벽을 봤더니 바다가 있더라고.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병원 같다고 생각했어.”
“하루키?”
“응. 하루키. 하루키 소설에 병원 식당이 꽤 많이 나오거든.”
“그랬나?”
“응. 노르웨이의 숲이랑 단편에서도 몇 편 나왔던 것 같고, 근데 신기한 건 말이야. 다 다른 이야기이고 하루키가 묘사하는 지점도 다 다른데 결국 똑같은 병원을 상상하게 되는 거야.”
“거기 가보자.”
“거기 가보고 싶어?”
“응."
“그럼 같이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