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둘
동헌의 부지 옆에는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크레인과 철근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원래라면 저 곳은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였으나 시에서 시립미술관 건설 부지를 알아보던 중 그의 초등학교 부지에 건립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의 모교는 100년이 넘은 소나무 하나만을 남기고 실체를 감췄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 시립미술관을 건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건립을 진행하던 도중 옛 객사 유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옛 건물을 파괴하면서 짓기 시작한 건물은 500년 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의 흔적으로 인해 건설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100년이 넘은 소나무 한 그루가 남아있다.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면서 땀을 흘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울창한 나뭇잎들 밑으로 들어가 뜨거운 해를 피하던 곳, 나무 뒤에 있었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뿜던 체육관의 내부에서 평균대 위 양팔을 직각으로 쭉 뻗은 상태로 가냘픈 두발을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체조 연습을 하던 여학생을 신기해하며 뿌연 창으로 훔쳐봤던 곳. 그런 공간이 지난날의 진한 자국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높고 거대한 크레인과 차갑고 서늘한 철근이 포근한 흙바닥을 무겁게 깔아뭉개는 그 순간에도 나무는 코르크 마개 위에 깊이 박힌 와인 스토퍼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역사를 머금은 뿌리를 아래로 뻗으며, 20년 전과 같이 아니, 100년 전과 같이 푸르고 울창한 잎을 뜨겁게 내뿜고 있었다.
“근데 나무는 왜 안 옮긴 거야?” “오래된 나무라서 뿌리가 너무 깊고 넓게 자랐대. 나무를 드러내려면 여기 이 부지 전체의 2배가 되는 땅을 드러내야 한다나? 너무 많이 자란 나무라서 잘라서 옮겨 심을 수가 없나 봐.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서 자세히 몰라.” K는 동헌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최근에 새로 산 낡은 Rollei 사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옛 관아와 그 안에 배치된 관사의 복장을 한 마네킹을 찍었고, 듬성듬성 어설프게 배열된 묘비석을 찍었으며, 꽃 덩굴이 감싸고 있는 벤치에 앉아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 그리고 그가 할머니와 함께 배드민턴을 함께 치던 작은 연못을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여기 예전에도 자주 왔겠다. 집이랑 가깝기도 하고 예전에 다니던 학교 바로 옆이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