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에세이(2022)

1편.

by C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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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항상 숙소가 서귀포에 있으면 이중섭 미술관부터 찾는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흰 소>나 <황소>같은 작품은 없지만 그의 필체만으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족을 향한 진심 어린 편지들이 있다. 엽서를 대신하는 작지만 무엇보다도 거대한 세계가 담긴 제주의 풍경이 그려진 그의 삽화들, 그 밑에 일본어로 쓰여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라는 형체를 내포하는 서툰 필체는 이중섭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 이중섭이라는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2. 자연이 빛을 반사하는 것은 지극히 올바른 일이다, 그들은 빛을 반사해야만 삶을 영위하고,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 나는 예전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어떠한 빛도 없이 어둠만이 가득한, 산의 곡선만이 그 어둠에 옅은 선을 남기던 그 공간에 혼자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나무를 흔드는 강한 바람 소리는 나의 두꺼운 살을 뚫어 심장 바로 앞에 멈춰 불어대는 것 같았고, 옅은 선은 바람 소리의 불특정한 리듬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그곳을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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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쇠소깎을 찾은 이유는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테우나 전통 조각배를 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운전을 못하기에 숙소에서 버스로 가장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쇠소깍이었기 때문이다. 쇠소깍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저마다의 웃음 섞인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절벽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쇠소깍에서 기다란 줄을 잡고 테우를 이동시키는 분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쇠소깍은 자연‧문화경관 특성상 모터 배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쇠소깍에는 테우와 전통 조각배만이 물 위를 흐른다. 사진을 찍고 나서 전망대에서 가만히 쇠소깍을 바라보았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은 묘한 물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점점 서로를 옥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순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소리가 들렸다. 테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전망대에 있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제주에서 처음 나눈 인사였다.



4.나는 가끔씩 파도가 범람하는 꿈을 꾸는데 제주에서도 이러한 꿈을 꿨다. 파도는 자고로 기상현상으로 인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운동이지만 나의 꿈에서는 항상 계곡이나 강에서 발생된다. 나는 항상 계곡이나 강의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련의 반응들, 즉 나의 꿈속에 위치하는 배역들과의 대화나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에 대한 의미 없는 몰두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어느새 차가운 물이 나의 허벅지를 강하게 때리고 있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순간 나는 조급한 마음이 되고 이전의 의미 없는 배역들과의 대화와 망상에 대한 몰두는 빠르게 사라진다. 꽤 가파른 절벽을 올라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면 계곡 혹은 강은 이미 바다가 되어있다. 나는 그 바닷속에 두고 온 사람들과 망상들을 생각하다가 잠에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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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수동필름카메라라서 가능한 사진들, 즉 자동 사진처럼 기계적 매커니즘을 통해 노출을 조정하여 보기 좋은 사진이 아닌, 그 순간 필름에 착상된 빛의 흔적, 마치 꼭 그래야만 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유일한 사진들을 좋아한다. 결국 사진은 사진가와 피사체와의 교감이 아닌 빛과 피사체의 교감인 것이다. 카메라는 결국 그것을 담는 기계에 불과하다. 사진가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나 자신조차도)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모든 사진은 빛과 피사체의 합, 즉 현실이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그 공간에 침범할 수 없다. 이 사진은 어떻게 보면 피사체와 빛의 교감이다. 나의 의견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만은 사진은 그렇다.



6.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쇠소깍의 해변에서는 저마다의 사람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각자의 마음으로 각자의 모양으로 각자의 소원으로, 그러나 그 각자의 모양은 채 하루가 못 갈 수도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가항력의 세찬 바람이 무너트릴 수도, 타인의 적의 혹은 적의 없는 장난으로도 망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해변에 내려갔을 때는 만든 사람을 알 수 없는 돌탑이 수십 개가 있었고, 그 옆에서 아이들이 또 다른 돌탑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무너질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돌탑을 쌓는다. 마음의 모양을 쌓는다. 나는 돌을 하나 집고 잠시 고민하였으나 바다를 향해 겸연쩍게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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