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리 공원
작년, 6월 팬데믹 종료 이후 이제 자유롭게 일본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을 때 문득 후쿠오카가 가고 싶어졌다. 그때는 서울로 상경한 지 4-5개월쯤 되었던지라 연차를 쓰기 조금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다녀왔다. 여행은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이 되어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문득 일본에 가고 싶었다. 나의 필름사진 계정의 탐색창에는 어느 순간부터 온통 일본 풍경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 어쩌면 오랫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금요일에 티켓을 끊었고, 그 다음날 아침에 후쿠오카로 향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어서 가볍게 백팩 하나를 둘러메고 공항으로 향했다. 수하물을 맡길 수 있었으나 짐이 없어서 키오스크로 바로 예약해 둔 비행기 티켓을 출력하고 빠르게 출국장을 통과한 뒤 여유롭게 앉아 보딩을 기다렸다.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각자의 이유들로, 각자의 이정표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후쿠오카 공항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일전에 가보았던 나리타공항과 간사이 공항에 비해 절반정도의 크기 정도인 것 같았다. 1박 2일 여행의 장점은 가벼움이 아닐까? 짐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오호리 공원을 갔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후쿠오카시미술관을 가기 위함이었다. 오호리 공원의 한가운데에 있던 후쿠오카시미술관은 오호리공원은 지나치지 않고서는 당도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날씨는 초여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몹시 더웠다. 얼굴이 불그스름해졌으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따갑게 할퀴었다. 이정표를 따라 앞만 보고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셔츠를 입고 고글을 쓴 상태로 러닝을 하고 있었다. 강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와중에도 그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러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불그스름해진 얼굴은 마치 화난 얼굴처럼 보이긴 했으나 미소를 옅게 머금은 듯했다.
후쿠오카시미술관은 굉장히 큰 규모의 미술관이지만 마치 오호리공원의 풍경 속에 잘 어우러져 있는 고풍스러운 노인의 모습처럼 보였다. 간결했으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일본건축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마에카와 쿠니오의 건축물로 층을 단차가 높지 않게 겹겹이 쌓아 올려 각 층마다 부드럽게 연결되면서도 이중적으로 서로 독립된 공간처럼 만들기도 한다. 미술관의 입구도 여러 가지였는데 나는 카페테리아가 정면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갔다. 오전 1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허기진 상태였기에 카페테리아로 들어가서 어설프게 일본어로 적힌 메뉴를 읽고 주문을 했다. 오호리 핫도그라는 이름의 핫도그와 카페라떼를 시켰는데 핫도그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평범한 핫도그였다. 핫도그를 먹으면서 후쿠오카시미술관 사이트에 접속해 어떤 전시를 진행하는지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현대미술 소장품 전시는 준비 중인 상태였고, 진행 중인 다른 전시는 시민갤러리 전시로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아 1층의 고미술 컬렉션 전시만 관람하였다.
고미술 컬렉션 전시에는 불교국가였던 일본의 불상부터 병풍, 유물, 교야키 등이 있었는데 가장 이목을 끌었던 작품은 단연 닌세이 노노무라의 교야키였다. 닌세이만의 채색기법을 사용하여 벚꽃명소인 나라의 요시노마야산의 절경을 담아낸 쿄야키인데 다양한 색의 조화와 금과 은의 과감한 사용을 통해 마치 벚꽃의 개화와 낙화까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시각적으로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또 오호리 공원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기꺼이 후쿠오카시미술관에 방문할 생각도 들 정도였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1994)을 보았다. 거리에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였던 아트 프로젝트 '뮤지엄시티 텐진 94'에 출품한 작품으로 텐진의 은행 앞에 갑작스럽게 전시하였다고 한다. 꽤 큰 크기의 작품이며 제주 본태박물관에서 봤었던 호박과 거의 같았다.
후쿠오카시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걷다가 일본정원이라는 곳이 보여 들어갔다. 입장료는 300엔 정도였고 내부는 일본식으로 꾸며져 있는 호수와 다리, 가렌산스이가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등의 오래된 일본영화 속에서만 보아왔던 가렌산스이를 실제로 볼 수 있음이 좋았다. 정원에는 스페인에서 여행 온 모녀가 있었는데,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여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의 스페인 모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정원에서 나와 호수를 계속해서 가로질렀다. 생각보다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 때문에 잠깐 카페에서 쉬었다가 갈까 생각했지만 누가 봐도 앉을자리가 없어 보여 빠르게 공원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호수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고, 그 사람들에 나 자신을 비춰보기도 하였다. 호수는 여전히 나를 비추고 있었고, 나의 얼굴 위로 거북이가 가로질러 가기도 하였다.
오호리 공원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있었고 그 다리를 가로지르면서 슬픈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슬픈 생각들,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했던 그 슬픔들. 호수의 섬을 이어주던 다리들을 마침내 벗어나자 나는 필름카메라로 그 다리를 찍었다. 찍고 나서 네가 예전에 찍어서 보내주었던 그 사진을 기억했다. 내가 찍은 사진은 네가 보내주었던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호리 공원을 가로지르는 위로 둥그렇게 솟구쳐 있는 다리를 찍은 사진. 나는 왜 네가 이 공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파 빠르게 그 공원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