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너에게 무엇을?

문득

by Chet

아직 이런 생각을 해. 너와 내가 함께 새파랗게 질려있던 바다를 등지고 있는 인파로 가득 찼던 절에 갔던 날, 왜 그때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절로 향하지 않던 외사촌 형이 생각났던 걸까. 위험한 4차선 도로 위를 이어폰 줄 하나씩 나눠 끼고 네가 좋아했던 뮤지컬 넘버를 들으며 겨울을 향해가던 어설픈 계절임에도 시린 마음 하나 없이 가볍게 걸었던, 그 음표대로 찍혔을 발자욱들은 아직 우리에게 선명할까. 우리는 그 날 오래된 것 하나 없는 신식 서점에 들렀고, 내가 구매를 고민했었던 한 시인에 관한 책을 네가 사주었지. 그곳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 우리와 책장에 꽂혀있는 낡은 소네트들. 그럼 나는 너에게 무엇을?



오래된 것 하나 없던 신식의 카페에서도 우리만 가장 오래된 것이었나, 너는 주변인들에게 사줄 원두를 고민하고 나는 그저 생각 없이 앉아 너를 바라봤던 날. 따뜻했던 카페의 기온 때문인지 살짝 붉어진 너의 뺨을 보고 짧은 시를 썼던 날. 너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올라타 근심하고, 나는 그런 널 그저 태평히 바라보고. 너는 나의 편지를 더욱 많이 원했고,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나는 또 성의 없는 핑계를 댔었지. 그게 너를 또다시 울리고, 어설픈 계절은 더 견고해져가고. 우리는 드넓은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작고 오래된 연못같이 작은 연꽃을 우리 등 위에 둥둥 띄었었지. 내가 할 말이 없어 버릇처럼 지난 우리의 기억들을 이야기할 때, 너는 기억력이 좋아 부럽다고 했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까. 기억은 우연히 보았던 네크라소프의 시처럼 건망증이 심한 나의 양심을 추억으로써 응징하는 죄악이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지금,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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