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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Aug 14. 2023

1983년은 팝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해였다

성공의 일상 - 음악 이야기

생애 최고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한 라이오넬 리치는 마이클 잭슨이 흘리고 간 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농담을 했다.   


필리핀으로 떠났던 사촌동생이 같은 아파트 옆동으로 이사 왔다. 형은 나와 동갑이고, 동생은 나보다 2살이 어렸다. 동갑의 침대 머리맡에는 흰색 산요 카세트데크가 있었다. 수납칸에는 카세트테이프 수십 개가 일렬로 놓여있었다. 

그전까지 아는 팝 가수라고는 'Wanted'를 부른 둘리스가 유일했다. 

우리는 학교를 마치고 거의 매일 어울려 놀았다. 지금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게임들을 주사위를 굴리고 능력치를 종이에 써가며 보드게임을 했다. 옆에선 산요 카세트데크에서 팝송이 흘렀다. 외국의 신문물을 접하듯 팝송 중학교 시절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사촌동생은 다가오는 일요일 자기 집에서 그래미상 시상식을 같이 보자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한 해를 빛낸 가수들의 잔치였다. 


마이클잭슨은 8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나왔다. 

시상식에서 빌리진을 부르며 문워크를 했고, 맨발로 하면 발이 잘 미끄러지지 않아 양말을 꺼내 신고 우리는 문워크를 하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반전도 있었다.

올해의 곡은 마이클잭슨이 아니라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가 수상했다.

폴리스는 'shape of my heart'의 삽입곡을 부른 '스팅'이 몸담았던 그룹이다.

사촌동생은 이 곡이 8주 연속 1등을 해서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당시 여자 팝 가수는 '올리비아 뉴튼존'과 '쉬나 이스턴'으로 팬층이 나뉘어 있었다.

나는 '쉬나 이스턴' 쪽이었는데, 쇼트커트에 동그란 눈으로 무표정하게 나타난 '쉬나 이스튼'은 이쁘지 않았다. 

형제는 '올리비아 뉴튼존'이 훨씬 이쁘다며 낄낄거렸다.


"저 여자가수는 남자처럼 생겼어!"

컬처클럽이라고 영국그룹인데, 보이조지는 남자라고 했다.


"저 남자가수는 너무 여자 같이 생겼는데?"

형제는 동시에 웃었다. 유리드믹스의 애니 레녹스는 여자라고 했다.


가장 미국적인 외모의 미국적인 락앤롤을 노래하는 빌리조엘은 'Tell Her About It'을 불렀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발목을 흔들며 자동적으로 몸이 둠짓거리는 흥겨운 곡이다.


모델인지 가수인지 혼란스러운 빼어난 미모의 듀란듀란.

전자음악에 맞춰 수십 개의 마네킹과 댄서가 로봇춤을 추는 허비 행콕의 'Rockit'.


지금도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지만, 1983년은 팝 역사상 가장 의미가 깊은 해였다. 

출퇴근하는 차 안은 1983년의 팝송이 흐른다. 



기억은 틀릴 수 있다.

듀란듀란은 그래미 시상식에 참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허비 행콕은 1983년이 아닐 수도 있다.

의미는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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