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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Sep 13. 2021

다 걸면 망한다

선물 옵션은 원수에게나 가르쳐줘라

주식시장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 주위에서 주식한다고 하면,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2,500개의 개별주식을 사고 파는 거래를 말한다. 


코스피 대표종목 200개를 묶어 지수로 만들어 거래하는 파생시장이 있는데, 대표상품은 선물과 옵션이다. 주식은 하한가를 맞아도 금액의 70%는 보존되지만, 파생거래는 워낙 레버리지가 커서, 아침의 1천만원이 오후에 1천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밉다면, 원수를 갚고 싶다면 선물 옵션을 가르쳐줘라! 개인투자자들이 파생시장에 발을 들이면 2년 안에 원금에 플러스 알파를 다 털리고 나간다고 한다. 허락된 도박시장이다. 한때 한국의 파생시장규모는 세계 1위였다. 진득함보단 화끈함을 좋아하는 우리 정서와 맞았다.


5년전 어쩌다 파생시장에 발을 들였는데, 서로 파생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와 친해졌다. 우리는 매일 시장상황에 대해 토론을 했다. 장중에도 수시로 카톡으로 의견을 나누었고, 옵션마감일이 다가오면 지수 맞히기 내기로 한달에 한번 만나는 밥값을 걸었다. 


투자자별 포지션, 옵션누적 포지션, 선물 미결제약정, 옵션 프리미엄 평균값, 델타 감마 ... 물리학 공식만큼이나 어려운 옵션 이론들. 당시 책까지 사가며 열공했다. 


희안한건 똑같은 데이터를 보고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데, 항상 방향이 달랐다. 외국인이 선물을 매수하기 때문에 오늘은 원웨이 상방이라고 친구는 말했고, 기관이 풋매수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박스 상단에서 하방으로 되돌릴꺼라고 나는 말했다. 외국인 방향으로 갈때도 있었고, 기관 방향으로 갈때도 있었다. 

틀렸을때 친구는 "외국인 빙신 같은 놈들. 저걸 손절을 하나?"라고 했고, 나는 빠른 시장 대응이라 했다. 

사실 누구의 말도 정답이 아니었다.  만일 한쪽의 말이 일방적으로 맞았다면, 둘중 한명은 한국 파생시장의 전설이 되었겠지. 


금요일이 휴일인 어느 목요일. 

둘다 상방을 봤다. 너무나 확실한 상방. 지금까지의 경험, 이론, 감을 다 끌어모았을때 무조건 상방. 왜 상방인지 친구는 자신의 파생관점에서 조목조목 설명했고, 나는 더더욱 내 포지션을 확신했다.

장마감 후에도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포레스트검프에서 쉴새 없이 떠드는 검프의 친구처럼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하고.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 나이에 와이프가 집에 있는날 친구를 초대하기란 정말. 남편의 파생거래가 불만인 친구의 와이프는 이제 쌍으로 미쳐가는군 하는 표정이었다. 술 대신 콜라로 건배를 하며, 낮에 떠들었던 내용을 몇번이나 우려내며 떠들었다. 듣다 못한 친구의 와이프는 시끄럽다고 소리쳤고, 우리는 다용도실로 쫓겨나 계속 떠들었다. 

수천만원의 수익금으로 뭘하지? 친구는 파생거래금액을 늘이라고 했고, 나는 저평가된 주식에 묻어 둘꺼랴 했다. 혹시 문제점은 없는지 다시 살펴봤다. 봐도봐도 밑으로 갈 가능성은 없었고, 쫄보나 하는 하방 해지는 절대 하지 않았다.


pixabay에서 다운로드


3일간의 꿀같은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동시호가부터 분위기가 수상했다. 시초가는 2점 넘게 푸른색 숫자가 찍혔고, 시작과 동시에 지수는 밑으로 쭉 빠졌다. 주말 내내 꿈꿨던 수천만원의 꿈이 날아간 실망에 젖을 틈도 없이, 손실에 대한 포지션 정비에 혼쭐이 났다.   


우리 둘이 상방을 확신했다고 시장이 상방으로 가는가?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자기 믿음 때문에 해지도 하지 않는다고? 거래에 기본도 안된거지. 

얻은거라고는 같은 방향일때 더더 의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토론은 계속되었고, 간혹 같은 방향이 나오기도 했다. 그날처럼 얼씨구나가 아니라, 오히려 조심의 신호가 되었다. 


시장에서 지나친 확신은 금물. 지금까지 맞았던 모든 거래가 행운일수도 있고, 100% 확신하고 전부를 거는 한번의 실수가 결국 시장 퇴출의 절차가 되기도 한다.


항상 겸손하고, 오늘도 거래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 메인 이미지는 pixabay에서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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