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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Sep 06. 2021

나는 철기시대를 산다

가위와 손톱깎이에 의존하는 삶

유난히 집착되는 물건들이 있다.

찾을 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 초조하다.


식구들과 살다 보면 내 물건인데 내 옆에는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건을 쓰고 정리하지 않는, 본인이 쓰기 편하게 자기 영역에 가지고 가는, 쓰고 아무 데나 둬서, 정작 내가 필요할 때 못 찾는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 가정에서 물건을 찾을 때 공통적으로 외치는 말이 있다.


"엄마 양말 어딨어?"

남편에게는 아이 이름 + 엄마로 호칭만 바뀐다.

양말뿐 아니다. 다음의 말을 넣어보면 다 뜻이 통한다. 

교복, 역사 문제집, 곰돌이 물통, 지난번 다이소에서 산 지우개, 설날에 할머니한테 받았던 돈봉투.

남편은 본인만 아는 디테일을 요구한다. 빨간 차키(가죽 색깔이 빨간), 봄에 아웃렛에서 산 체크무늬 셔츠, 작년 여름에 세탁 맡겼던 띠어리 바지,  재작년에 태국 갔다 와서 출력한 사진. 


가끔 이런 답이 들리기도 한다.

"그걸 왜 내한테 묻노!"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물건을 찾아준다. 희한하게도 정작 본인의 물건은 깜빡하고 맨날 찾아 헤맨다.


택배 박스 개봉할 때, 택배 싸려고 박스테이프 자를 때, 과자 봉지 뜯을 때 가위는 필수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려면 수많은 박스와 비닐을 뜯어야 하는데 손으로 뜯어도 되지만, 나는 가위를 쓴다.


"가위 본 사람?"

식탁 옆 서랍에 항상 두는 가위. 매번 쓰려고 찾으면 없다.

식탁 위, 소파, 책상 위에 분명히 있겠지만, 왜 내 가위를 내가 쓰고 싶을 때 내가 못 쓰느냔 말이다. 왜 굳이 가위 썼거나 본 사람에게 내 가위를 달라고 애원해야 하느냔 말이다.


쿠팡으로 2개 1세트로 파는 가위를 주문했다. 식탁 옆 서랍에 가위 2개를 넣으면서, 이제부터 가위를 쓰면 꼭 여기 다시 넣어놓으라고 공표했다. 1개는 벌써 사라졌고, 1개도 있다 없다 한다. 가위를 여기 두라는 말은 잊고, 여기 가위 있다는 말만 기억되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손톱이 신경 쓰이면 깎을 때다. 글씨를 쓰는데 손톱 모서리 부분이 걸리적 걸려도. 폰을 만지다 손톱이 길게 보일 때도.

손에 꺼시래기가 생겼다. 잘못 뜯으면 피부가 뜯기면서 피가 나고 아린다. 오직 손톱깎이만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집 밖에서는 꺼시래기와 마주치지 않아야 되는데, 꺼시래기에는 텔레파시가 있는지 꼭 눈에 띄게 되고, 그때부터 온 신경은 꺼시래기로 간다. 참다 이빨로 물어뜯지만 중간에 잘리면 더 신경 쓰인다. 결국 못 참고 손톱으로 스냅을 이용해 뜯다가 피를 보고 만다. 

잘 참고 집에 와서 손톱깎이로 꺼시래기를 깔끔하게 처리하면, 긴 시간 인내한 나 자신이 대견하다. 

  

손톱깎이는 정말 무식하게 많이 사뒀다. 식탁 옆 서랍과 붙은 붙박이 장 맨 밑 칸에 몇 개씩이나 넣어뒀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6~7쯤 사둔 것 같고, 2~3개가 함부로 돌아다녀도 몇 개는 꼭 그 안에 있도록.


가족들 각자의 영역에 1~2개의 손톱깎이는 꼭 있다. 근처에 두는 게 편한가 보다. 다 내가 산 손톱깎이들이다. 붙박이 장 맨 밑 칸에 손톱깎이가 하나도 없는 걸 봤지만 이젠 신경 안 쓴다. 가족들에게 가서 "손톱깎이 좀!"이라고 공손하게 말하면 바로 내준다. 사실 내꺼지만 쓰고 다시 가져다준다. 그럼 다음에도 찾을 필요 없이 손톱깎이를 달라면 바로 쓸 수 있다. 


아내가 손톱을 깎지 말고 갈아보라고 했다. 한동안 갈기도 했는데, 지렛대의 원리로 긴 손톱을 톡톡 잘라내는 손톱깎이만의 커팅감은 가는 걸로 절대 대체가 안된다. 얼마 못 갈고 손톱깎이로 돌아왔다. 


사진은 pixabay에서


2000년에서 21년이 흘러, 4차 산업 혁명의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인간을 이겨버리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철기시대의 2가지에 집착한다. 


# 메인 이미지 사진은 pixabay에서

# 일상에서 우리는 '꺼시래기'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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