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돌이 Aug 30. 2021

방귀 이야기

방귀는 가급적 트지 말지?

결혼식 피로연은 

선배가 나고 자란 교회 바로 옆 가정 주택에서 진행되었다.

선배의 아버님은 목사님.

크리스천인 선배는 교회에서  결혼했고, 부산 외각의 작은 교회라서 낮은 기수들은 밖에서 대기했다.


예식이 끝나고 수십 명의 학생들은 집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선배들은 안방에 옹기종기, 학생들은 마룻바닥으로 된 거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학생회장의 사회로 두 분의 연애사와 결혼식에서만 재미있는 몇 가지 짓궂은 게임이 진행되었다.

거의 모든 모임에 선배들의 일장 훈시는 우리 동아리의 전통이다.

스승님에 대한 존경, 학문에 대한 열정, 지금 하고 있는 우리 공부의 믿음.

후배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은 훈시를 

몇 마디로 끝내는 분도, 대하드라마를 펼치는 분도 있었다.


결혼식이라 오늘은 설마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최고 기수인 결혼 당자사가 비쭉거리는 신부를 외면한 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와 함께 일장 훈시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에,

아래 기수들은 그 분위기를 감사하게 이어받았다.


때는 겨울.

후배들 추울까 켜놓은 보일러는 바닥을 데웠고, 

좁디좁은 방안의 수십 명의 열기는 체취와 졸음으로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배고픔과 졸음의 끝자락에 누군가 허각 하는 표정을 짓는다.

방 안에서는 선배들의 연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까마득한 후배,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끝나고 학생회장의 호된 꾸중을 들어야 한다.

자칫 동아리 퇴출이라는 협박 카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옆사람 또 옆사람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내 순서가 되면서 그 정체를 알았다.

살면서 가장 심한 방귀 냄새를 꼽으라면 당연히 선배 결혼식 때다.

환기도 안 되는 방에서, 하늘 같은 선배의 연설시간에, 

소리를 낼 수도 웃을 수도, 범인이 누군지 자수해라고 소리칠 수도 없다.

정체된 공기 속에서 방귀 냄새도 그 속에 정체되어 선배들의 훈시가 끝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방귀 냄새의 범인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평소 방귀를 잘 뀌는 내 친구 2명과 내가 지목을 받았는데,

친구들의 방어 수준을 봐서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

냄새 타입도 친구들께 아니다.






매일 저녁 

동백섬을 걷는다.

탁 트인 공간을 힘차게 걷다 보면 방귀가 자주 뀌고 싶다.

슬쩍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으면, 시원하게 방귀를 뀐다.


가끔 의외의 방귀를 목격한다.

남 앞에서 방귀를 뀌는 그런 교양머리 없는 행동을 하는 건 문화인의 자세가 아니야라고 할 것만 같은

러닝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동백섬을 걷는 40~50대 여성분들.

뽕이 아니라 대부분 뿡뿡뿡뿡 연속 방귀다.

나의 빠른 걸음은 금세 그분들을 지나친다.

미동도 없다.

마스크를 꼈는데 낀 거 알면 뭐?라는 느낌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들었어!라는 뉘앙스를 남기고 나는 사라진다.


저녁 식사

중이었다.

가까우면 방귀 튼다고 하는데,

가까워도 방귀는 듣기 싫다.

내가 뀌는 방귀만 애교지, 남들 방귀는 싫다.


방귀를 튼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

식사 마무리에 나는 뿡뿡뿡뿡 연속 방귀를 뀌고 말았다.

일시에 찡그려지는 지인들.


pixabay에서 다운로드하였습니다.


"똥꼬에 오리 박았어?"


아놔~ 에이~의 비난 속에 누군가 뱉은 말.

살면서 방귀에 대해 이토록 창의적인,

탁월한 비유와 유머를 닮은 묘사는 첨이었다.

상대는 불쾌를 말했지만, 나는 문학적 표현에 대한 예찬을 전했다.

하지만 내 언어로 충족시킬 수 없었다.


# 메인 이미지는 pixabay에서 다운로드하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주식시장은 핸디가 없는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