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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Oct 18. 2023

늦여름의 여름음식

성공스토리 - 일상

다음에는 이러지 말자 생각하지만, 매번 선택은 비슷하다.

틀린 수학문제를 시간이 지나 다시 풀면 똑같이 틀리는 것처럼.

뇌의 회로가 행동을 지배하나 보다.


가을 냉장고에는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깝지만 먹고 싶지 않다.

이번에는 다르다 선택하지만, 버려지는 일은 똑같다.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는 늦여름.

열대야는 끝날 줄 모른다.

어느 저녁 아이들과 편의점에 들렀다.

대형마트보다는, 집 앞 편의점이 아이들에게는 보물섬이다.

작게 포장된 젤리, 사탕, 쿠키를 파는 진열대 앞에 서서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고민하는 재미를 둘이서 즐기고 있다.

약간의 지루한 시간. 

편의점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벽면 한쪽에 진열된 음료수칸으로 눈길이 간다.

수입맥주 4캔에 1만 원.

일반캔보다 크다.


평소 소주 4잔이 주량이다.

생맥주 2잔이면 만취상태로 귀가한다.

혼자 다 마실 수 있을지 살짝 고민이지만, 아이들의 과자 옆에 맥주 4캔이 놓인다.


"여름도 다 갔는데 맥주를?"

"아직 덥잖아!"

"나는 안 마실 거야."

"조금만 도와줘. 이렇게 큰 거 혼자 못 마셔!"


그 날밤 냉장고에 넣어둔 한 캔을 꺼냈다.

"나는 안 마셔!"

잔을 꺼내 조금 부어 아내에게 건넸다. 입술만 축이더니 자러 들어간다.


어제까지 오른쪽으로 최대한 돌렸던 샤워기의 온도를 왼쪽으로 돌린다.

헉하고 새벽잠을 깨우던 열기는, 시원한 밤공기의 여운으로 바뀌어 있다.

맥주를 찾던 갈증은 냉장고 구석으로 점차 숨는다.




집이나 사무실이 아니면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

어느 해 여름.

패션후루츠의 맛에 매료되었다.

시원 새콤한 맛과 씨앗을 콕콕 씹는 재미까지.


낮 동안 달궈진 거실은 저녁이 더 힘들다.

커피는 잠이 안 올까 노우.

맥주는 지난해에 실패.

쿠팡으로 패션후루츠를 주문했다.

100번은 먹을 수 있을만한 양이 다음날 새벽 배달되었다.

비닐팩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며칠 동안 탄산수에 얼음을 넣어 마셨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권했지만 원래부터 패션후루츠는 안 좋아했단다.

밤공기는 선선해졌고,  패션후루츠는 한동안 냉동실에 있다 버려졌다.





주말 저녁 아이들이 좋아하는 집 앞의 돼지갈비를 먹으러 갔다.

대패삼겹으로 입가심을 하고, 양념갈비를 주문했다. 


"다 먹고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없는 게 없이 다 파는 무인판매점.

뜨거운 불판 앞에서 고기를 먹고 나와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이 더 당긴다.

겨울이면 과자 위주로 채울 텐데, 장바구니는 아이스크림 위주로 채워진다.

돼지바, 죠스바, 누가바. 바밤바, 쌍쌍바.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설레임, 찰떡아이스, 비안코.


스낵류도 담는다.

새우깡, 양파깡, 눈의 감자, 짱구, 롯데샌드, 브이콘.


이미 가득 채운 장바구니를 들고 잠시 고민한다.

"아빠 왜?"

투게더를 담을지 말지.

6천 원.


어느새 바뀐 밤공기.

냉동실의 먹다 남은 투게더.

이리저리 치이면서 뚜껑이 구겨져 반쯤 열려있다.

녹다 얼었다를 반복했는지 아이스크림 표면에 성애가 끼었다.

숟가락으로 단단히 얼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긁어서 먹어보니 부드럽지 않은 맛이다.

조금 시도하다 싱크대에 버렸다.


 



늦여름에 여름 음식은 사지 말자.

밤공기는 단숨에 싸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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