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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Mar 12. 2022

덩크슛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어릴 적 아련한 추억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

아이돌을 꿰고 사는 고2 딸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처음 듣는 노래가 아니다. 귀에 익숙해 가사를 흥얼거려본다. 

"방금 전 그 노래 다시 한번 불러볼래?"

"무슨 노래?"

"좀 전에 불렀던 노래 있잖아.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

부르라니 싫단다. 시키면 싫어하는 사춘기다. 연우는 같은 부분을 계속 흥얼거려 보지만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가사 다음 부분이 클라이맥스인데 모르겠다. 가수도 노래도 떠오르지 않는다.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클라이맥스 부분만 알면 알겠는데."

"덩크슛!"

"어? 이승환 노래잖아. 니가 이 노랠 어떻게 알아?"

"이승환 노래야? 엔시티가 리메이크했어."


연우는 이승환 팬이다. 노래연습장이 붐이던  90년대. '내게'는 노래로 어필하고 싶을 때 부르던 비장의 무기였다. 앙코르는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모창 했다. 이승환을 좋아하다 보니 점점 창법도 이승환이 되었다. 

히든싱어 이승환 편을 보며 대중이 알던 것과 다르게 비음이 아닌, 마이크를 저 멀리하고도 무대를 꽉 채우는 발성의 소유자였다.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는 무대 설치비 때문에 수많은 매 공연이 매진이지만 적자로 망했다고 했다. 마침 연말에 부산에서 공연을 했다. S석으로 2매를 예매했다.



"집에 가나?"

20만 킬로를 넘게 탄 엘란트라가 연우 앞에 섰다. 창문을 내리고 연준이 물었다. 같은 학과에 다니고 똑같이 재수를 했다. 이름도 연우, 연준 비슷하다. 집도 같은 아파트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50명 중 같은 아파트에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동아리가 달라 집에 가는 시간이 달랐다. 간혹 비슷하게 마쳐도, 연준의 차에는 같은 동아리 동기들이 타고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15분쯤 걸리는 버스정류장까지 연준은 친구들을 데려다줬다. 

"같은 아파트인데 니 차 타고 집에 가는 건 처음이네."


밀림에서 코끼리가 소리가 들린다. 끽끽 하는 원숭이 소리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북을 두드린다. 

"이 노래 아나?"

새로 나온 이승환 앨범에 있는 곡이다. 연준은 건너뛰기를 하거나 잠시 딴짓을 하며 잘 듣지 않는 곡이다.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

회식 때 술 한잔 하지 않고도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는 외향적인 연준.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노래를 하다니.  

"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애절한 발라드도 화끈한 댄스도 아닌 '덩크슛'은 연우 취향이 아니다.

  

연우는 코끼리와 원숭이가 등장하는 아프리카 밀림 타잔 같은 전주도, 중간의 아발라바히기야라는 정체불명의 주문도, 무엇보다 유치한 가사도 싫었다.

이승환 노래 중에 덩크슛처럼 경쾌한 노래가 한곡 더 있다. 'Jerry Jerry Go Go'. 노래연습장에서 몇 번 불렀는데, 신나게 달리다가 김 빠지는 느낌의 곡이다. 두 노래 작곡가가 모두 더클래식의 김광진이다. 연우가 제일 좋아하는 이승환의 노래는 '내게'. 작곡가가 김광진이다. 더클래식의 '마법의 성'은 수백 번 듣고도 더 듣고 싶은 곡인데, '여우야'는 지금도 들리면 스킵한다.  


연우는 운동에 잼병이다. 특히 공으로 하는 거의 모든 운동에 재능이 없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농구 드리블 시험을 봤다. 몇 번 땅에서 튄 농구공은 연우의 발을 맞고 멀리로 떠났다. 대학 와서 친구들은 쉬는 시간 농구를 했다. 대학시절 말주변 없고 조용한 성격이 서로 맞아 주말에도 만나 차를 마시던 절친이 있었다. 절친은 쉬는 시간이면 농구를 하러 나갔다. 가끔 절친이 얄미웠다. 농구가 더 싫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집 가는 길 내내 연준은 덩크슛을 불렀다. 전주에서 흥얼거리다 덩크슛 부분만 나오면 어깨를 들썩이며, 운전대를 탕탕 내리치며 흥을 돋았다.

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백 킬로 거구의 연준은 심한 소아마비로 쇠로 된 목발을 집고 다닌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강의실 계단을 오르며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렸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와 이승환 카세트테이프를 넣었다. 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누군가 스킵했던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덩크슛'은 이런 사연이 담긴 노래야. 연우의 스마트폰에서는 이승환의 덩크슛이 흐른다.  

"아빠 너무 슬픈 이야기잖아."

"아니야. 친구는 너무 즐겁게 덩크슛을 불렀어. 자기는 절대 덩크슛을 할 수 없지만 덩크슛 노래를 너무 즐겁게 불렀어. 친구는 노래를 하면서 날아서 덩크슛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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