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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Apr 04. 2022

노래 배우려면 노래연습장 가지 마세요

보컬 트레이닝 첫 번째 미션

학원에 처음 가면 학력평가를 하듯, 수업 첫날 연우는 녹음 부스에 들어가 준비해 온 노래를 불렀다. 1절도 채 못부르고 노래를 중단했다. 초여름이라 좀 덥기도 했지만, 연우의 머리 밑, 겨드랑이, 등은 땀에 흠뻑 젖었다. 자신만만하게 등장해 몇 소절 못 부르고 탈락하는 슈퍼스타 K를 보며 비웃었던 연우였다. 

"처음 들어가면 다 그래요."

녹음 부스는 마이크와 헤드폰만 있는 네모난 공간일 뿐이었다. 여자 친구의 생얼을 보고 놀라듯, 자신의 노랫소리에 놀랐을 뿐이다.

"이제 노래연습장은 가지 마세요."


노래연습장에서 노래를 하면 마이크, 앰프, 스피커가 목소리를 이쁘게 치장해준다. 기계가 음정, 박자, 발음을 적당히 화려하고 이쁘게 들리게 해 준다. 선생님은 찬찬히 설명했다.

연우가 평소 노래연습장에서 부르며 들었던 노래는 기계가 만들어준 가짜 노래였다. 스마트폰 어플로 꾸민 가짜 얼굴처럼, 자신의 노래가 아니었다. 녹음 부스는 모든 마법이 사라지게 만드는 생얼의 공간이었다.


"아예 가면 안 되나요?"

웃으며 말하는 연우의 말에 선생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지금은 호흡, 발성, 음정 아무것도 안되는데, 노래연습장을 갔다 오면 초보때는 금세 엉망이 돼요. 게다가 노래방 마이크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소리가 잘 나오기 때문에 목이 게을러져요."

선생님은 노래하기 전 목을 푸는 이유, 성대도 근육이기 때문에 단련시키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준비운동 없이 무게를 치면 근육 손상이 오듯이 성대도 똑같다. 평소에도 목 관리를 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이어졌다. 


"집에 헤드폰 있나요?"

"굉장히 좋은 이어폰이 있습니다."

"이어폰 말고 헤드폰을 하나 사세요."

"전에 여행 갈 때 샀던 닥터드레 헤드폰이 있는데 음질이 굉장히 좋아요."

"그런 건 음을 과장되게 들려주기 때문에 보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요. 제가 알려드리는 걸로 새로 사세요."

인터넷으로 소니의 MDR-7506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모니터링용 헤드폰이었다. 

연우는 취미생활에 돈을 아끼는 스타일이었다. 수영할 때도 수경, 수영복을 할인점에서 제일 저렴한 걸로 샀다. 혼자 금정산을 오를 때는 대충 운동화와 추리닝만 걸치고 다녔다. 당시는 경제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허세 같아 돈을 쓰기 아까웠다. 

적당히 쓰고 살아야 한다고 결혼초 아내와 많이 싸우기도 했다. 닥터드레 헤드폰은 총각시절이면 생각도 안 했을 사치 아이템이었다. 


"헤드폰으로 수업할 노래를 자주 들으세요."
"출퇴근하면서 차 안에서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따로 시간이 잘 안 나는데 그때 들으면 안 될까요?"

"수업받으러 오신 거 아니에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좀 하세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카오디오도 착색된 소리다. 소니 헤드폰은 모니터링용이라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노래를 착색 없이 들려주기 때문에 악보 펴놓고 가수가 어떻게 불렀는지 계속 들어야 한다. 

수업시간은 겨우 10분 정도 남았다. 첫날은 노래 없이 선생님의 강의가 계속되었다.


"한 번씩 회식하면 2차로 노래연습장을 가는데..."
"네? 술 먹고 절대 노래하시면 안돼요."

"네?"

한껏 실망한 연우의 대답에 선생님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술을 마시면 성대가 아픈지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성대가 빨리 망가져요."

일상이 즐거우려고 시작한 보컬 트레이닝이었다. 술을 잘 못해서 매번 힘겨운 회식자리. 이어지는 2차 노래연습장을 가기 위해 주는 잔 받으며, 졸며 자리를 지켰다. 노래를 하고 싶어 시작한 보컬 트레이닝인데 노래를 금지당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김연우라고 하셨죠?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다음 주부터 시작할 거니까 집에서 연습해 오세요. 악보 제 것도 가져오는 거 잊지 마시고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선생님이 피아노를 친다. 한 소절을 부른다. 따라 하세요 하면 반주에 맞춰 따라 부른다. 가사의 발음을 지적받고, 다시 부른다. 음정이 틀렸다. 건반을 하나하나 누르며 부르는 선생님의 시범에 맞춰 다시 부른다.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다음 소절로 이어간다. 연우가 상상한 수업이었다. 

수영교실은 발차기부터. 붓글씨는 한 일자부터. 미술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 그리기부터. 보컬 트레이닝은 노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겹고 혹독한 시련이 시작되는 첫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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