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돌이 Dec 16. 2015

빛 바랜 사진만큼 너는 사라진다

사진으로 과거를 추억하다

15년 전, 끝물에 산 필름카메라는 이제 버려야겠다.

디카보다 편한 폰카 덕분에, 내가 원하면 언제어디서나 사람이나 장면을 저장할 수 있다. 필름이 아닌 파일로 저장된 사진은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원하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으며,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곧바로 전송할 수도 있다. 파일은 동일한 퀄리티를 보장하고, 일부러 보정하지 않는다면, 원판불변의 법칙이 보장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우리 세대에게는 적응 안 되는 예식과도 같았다. 찍힐 위치를 정한 후, 하나 둘 셋 찰칵하는 순간까지, 움직이지 않고,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아야 한다. 만들어진 어색한 자세, 김치~로 통일된 웃음들... 어쩌면 필름에 담은 사진의 묘미는 이런 부자연스러움들 일지도.


한통에 겨우 24장면을 담을 수 있는 필름이 다 돌아가고 나면, 필름을 되감아 뚜껑을 열어서, 꺼낸 필름을 현상소에 맡긴다. 2~3일후 사진교환권을 쥐고 사진을 찾으러 가는 길은 지난 순간들을 추억하는 두근거림이다. 하지만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거나, 심하게 초점이 흔들린 사진은 인화되지 않아 실망이기도 하다. 대개는 찍으면서 작품일 꺼라 기대했던 장면들이다.


필름 사진은 우리와 함께 세월을 산다.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점점 중심에서 멀어지지만, 낡아빠져 거실 책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구석 서랍에서 겨우 쓰레기를 면한 정도로만 존재하지만, 나의 지난 삶을 오롯이 간직한 채, 나의 공간 안에서 나의 추억의 단편들을 꼭 쥐고 있다.


앨범을 펼쳐본다.

아... 사진이 많이 희미해졌다.

햇볕에 벽지가 탈색되듯,

오래 꽂혀 있던 책장의 책 겉표지가 누렇게 변해가듯,

우리의 추억이 하나둘 사라져가듯,

사진은 귀퉁이에서부터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사진을 보다 문득 퇴행을 한다.

큰집 마당에서 숨바꼭질하던,

나만 계속 술래가 되어 울던,

불 꺼놓고 이불 속에서 귀신놀이 하던,

마당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 만들던,

10살의 내가 되어 본다.


또래중 제일 처음 안경을 꼈던, 눈이 많이 나빴던 사촌동생은 지금 외국에 산다.

나랑 동갑이며, 나보다 머리가 좋았던 사촌누나는 서울에 산다.

내가 똘마니처럼 졸졸 따라다녔던 나의 우상 사촌형은 부산에 살지만 교류가 없다.

고모의 출가 덕분에 우리 가족이 된 고모부는 이제 안 계신다.

장수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도 이제 안 계신다.

이 모두가 10살인 나와 함께 사진 속에 모여 있다.


머리를 더듬거려도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추억처럼,

사진의 그들도 빛이 바래 희미해져 간다.


몸이 달아오른다.

눈앞이 흐려진다.

눈이 따끔거리더니 눈물이 흐른다.

나이가 드니 눈물조차 짠지 눈이 심하게 따끔거린다.

사진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던 나를, 그 시절의 그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디카와 폰카로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겨놓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컴퓨터가 느려져서 ‘초기화’를 실행했더니, 사진들이 없어졌다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사진들은 빛의 속도로 증발되었다.

희미함이 그립다 이제는 ...

작가의 이전글 일어났으면 제발 알람을 좀 꺼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