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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Oct 05. 2022

에스프레소로 만나는 아침의 행복

내아젤맛 - 내가 만든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다

카푸치노도 만들 수 있는 노쇠한 머신을 뒤로하고 에스프레소 추출 기능만 있는 기기를 샀다. 통화, 카톡, 알람, 유튜브, 웹툰 보기 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최초 세팅조차 바꾸지 않는 최신형 스마트폰의 고급 기능처럼, 머신의 다양한 기능은 없어도 서운하지 않은 사치였다. 

전원과 추출 딱 두 가지 기능만 있는 노란색 에스프레소 머신. 쥐포를 넣고 레버를 당겨 누르면 치익 소리와 함께 쥐포가 굽히면 레버를 올려 쥐포를 꺼내는 100% 수작업 기기처럼, 파드 조차 레버를 들어 올려 빼줘야 하는 심플함.  


종이컵에 내린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가 아니었다면 5~10분 지각이 루틴이었을지도. 9시에서 10분 일찍 출근해 지하 행정실 문을 연다. 행정부 출근은 9시 30분이라 잠시 후 5분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다. 

기기의 전원부터 넣는다. 가방을 옆 의자에 올려두고 예열되는 시간 동안 준비를 한다. 박스에서 파드 2개를 꺼내 포장을 벗겨 둔다. 이전에는 종류별로 다양한 파드를 즐겼지만, 지금은 한 가지를 박스로 산다. 옆 테이블에서 종이컵을 하나 꺼내 기기에 받쳐둔다. 고상하게 에스프레소 잔을 쓰고 싶지만 행정실에는 세면대가 없어 밖의 화장실까지 가서 잔을 씻고 와야 한다. 귀찮음 때문에 종이컵을 쓴다. 

 

파드 제거 하기


레버를 내려 파드를 압착하고 버튼을 누르면 모터의 소음이 진한 갈색 액체를 추출한다. 추출이 끝나면 꼭 파드를 빼줘야 한다. 놔두면 파드가 말라 기기에 들어붙는다. 억지로 빼내야 하는데 자칫 종이가 찢어지면 기기 안은 커피 가루로 엉망이 된다. 손가락으로 쓸어내고, 물티슈로 닦고 한참을 구시렁거리며 아침을 망친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추출 버튼을 눌러 뜨거운 물로 파트를 적신 후 빼낸다. 



경고문


에스프레소 머신이 내 개인용인지 공용인지 애매하게 정의되어 있다. 누구나 편하게 마시라고는 했지만, 누구에게나 그 말을 하진 않았다. 누군가는 한 번씩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신다. 문제는 가끔 이용하기 때문에 파드 빼는 걸 깜빡한다. 

파드를 제거하지 않으면 파드 20개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경고문을 붙인 후 눈에 띄게 사고는 줄었다. 장난 삼아 붙였는데, 심각한 경고로 보였나 보다. 잘 빼내거나, 더럽고 치사해서 안 마시거나.


투샷


에스프레소는 두 샷으로 추출한다. 행정실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는 지하 행정실에서 1층 진료실로 조심히 이동된다. 오른손에 가방을, 왼손에 잔을 들고 계산을 오르며, 매일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계단에 발이 걸려 커피를 쏫는. 다행스럽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종이컵의 에스프레소를 텀블러에 붓고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3/4 지점까지 붓는다. 농도도 양도 적당하다. 매일 즐기는 내가 만든 아메리카노. 


출근길 골목 커피점 앞에 차를 세운다. 파스텔 톤의 네모난 창틀 너머로 마스크를 낀 바리스타가 주문을 받는다. 바리스타가 아니라 간단한 기기조작과 레시피를 배운 아르바이트생에 더 가깝게 보인다.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받아 차의 홀더에 꽂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차에서 내려 오른손에는 가방을, 왼손에는 커피 컵을 들고 살짝 들뜬 기분으로 출근한다. 자리에 앉아 한 모금. 도심의 낭만을 즐기려던 기분은 산산조각 난다. 주위에 많은 커피전문점이 있다. 매번 커피는 싱겁다, 쿰쿰한 냄새가 난다, 바닐라 향이 강하다, 쓰다. 사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한 번도 적응이 안 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완성





출근 전 야채 과일 주스와 함께 하는 에스프레소 한잔. 


에스프레소


크레마 가득한 진한 갈색의 액체. 흰 잔을 바꿔가며 매일 아침 10분의 행복을 만난다.

출근해 직접 내린 에스프레소로 투샷으로 만든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오전의 행복.

1개 600원짜리 파드 3개로 행복주머니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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