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복들 시리즈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빨간색일까? 이런 생각은 한번쯤 해본다. 색약이 아니라면 빨주노초파남보는 일정한 파동을 가지기 때문에 남들이 보는 빨간색이 나에게는 파란색으로 보일 일은 없다. 하지만 맛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른 듯하다.
TV 예능에서 가끔 등장하는 레몬 먹기. 신맛에 얼굴을 찡그리는 연예인을 보면 시청자는 즐겁다. 마트에서 사 온 레몬으로 가족들과 레몬 먹기를 재미 삼아 해봤다. 큰딸은 인상을 찡그리며 먹다가 도중에 포기했지만, 나는 우걱우걱 맛있게 씹어 먹었다. 신맛이 나긴 하지만 달작지근한 과즙이 맛있었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을 때 아내가 비타민 C 가루를 먹으라고 준다. 아이들은 신맛에 물을 들이키는데, 나는 혀로 신맛을 음미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입안에 단맛이 퍼진다.
반대로 단맛에는 10배는 민감한 듯하다. 식구들이 맛있다고 먹는 케이크를 나는 몇 점 먹질 못한다. 너무 달아서 오히려 물을 들이켜야 한다.
10년이 훌쩍 넘은 일상 속의 행복. 에스프레소를 즐긴다고 하자 어떤 직원은 "가장 에스프레소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이신데"라고 농담을 한다. 간혹 내린 에스프레소를 직원들에게 맛보라고 잔을 건넨다. 진한 냄새에 손사래 치며 거부하는 직원, 입술로 살짝 적시고 인상을 찌푸리는 직원, 먹고 세면대로 뛰어가 뱉고 물로 입을 헹구는 직원. 드물게 깊은 커피향의 크레마 가득한 진한 액체를 마시는 직원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이 독한 걸 왜 마시냐?", "허세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 아침마다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누구도 보지 않는데 허세일 리는 없다.
지금은 지하 행정실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지만, 처음에는 1층 정수기 앞에 두었다. 원장님들도 가끔씩 내려 드시라는 마음으로 두었는데, 호기심 많은 고객들이 기기를 누르는 바람에 고장이 나버렸다. 새로 사서 지하 행정실로 옮겨두었다.
나와 더불어 가장 에스프레소와 어울리지 않는 분이 정 원장님이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신다. 내가 가져다놓은 스테인리스 잔을 정 원장님이 자기 것이라며 사용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단다. 내가 선물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간혹 기기의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열 때문에 파트가 말라붙어서 다음 날 커피를 내릴 수 없다. 범인은 씨름선수 같은 체형의 부장님인데, 역시나 에스프레소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곰 같은 외모다.
지인들 중에 브런치를 알려드렸고, 글이 올라오면 읽어주시는 과장님이 계신다. 장난으로 간혹 에스프레소를 맛보게 드리면, 커다란 눈을 흘기신다. 생일날 과장님이 작은 쇼핑백 하나를 내민다. 열어봤더니 카페 부사노의 에스프레소 잔이었다. 내 글에 한 번 언급되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굳이 먼 곳까지 가서 사오셨다.
여름에 에스프레소를 내려 냉장고의 얼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토요일 근무하시는 원장님에게 몇 번 만들어 드렸는데, 결국 그만두었다. 에스프레소 파드 하나는 600원 정도. 아메리카노를 만들려면 두 개는 내려야 한다. 원가 1200원. 건물 입구 옆 13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아깝지 않은데, 내 파드 두 개는 아깝다. 희한한 심리다. 에스프레소는 나만의 공간이고, 이 공간을 공유하기 싫은 걸까? 아니면 맛에 대한 평가가 싫은 걸까?
이런 소소한 일상이 주는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한 맛이 주는 만족감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그저 쓰기만 한 음료일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정말 다를 수 있구나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 차이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것일까?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부드러운 향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조용한 주방에 들어서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전원을 켠다. 기계가 예열되는 동안 나는 커피 파드를 준비한다. 이 작은 파드 하나가 만들어낼 진한 맛을 생각하며,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예열이 끝나면 파드를 기계에 장착하고 버튼을 누른다. 기계가 작동하며 나는 에스프레소 잔을 준비한다. 작은 잔에 뜨거운 커피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짙은 갈색 액체가 잔을 채워나간다. 크레마가 형성되며 잔 위에 부드럽고 두터운 거품이 생긴다. 그 크레마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물론, 첫 모금에서 느껴질 그 풍부한 맛을 기대하게 만든다. 에스프레소가 다 내려지면, 나는 잔을 들어 첫 모금을 천천히 음미한다. 커피의 진한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첫 맛은 쌉싸름하지만 곧이어 부드러운 고소함이 입안에 퍼진다. 혀끝에서부터 시작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잠시 동안 모든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이 순간은 마치 나만의 작은 명상과도 같다.
에스프레소를 통해 나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찾았다. 커피 한 잔이 주는 기쁨은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작은 기쁨들이 모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앞으로도 나는 이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나만의 에스프레소 시간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