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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Feb 14. 2023

나만의 소울푸드

야채주스

"결혼식날 신랑 입장하는 순간 화장실에 뛰어갈 거다!"

초등학교 시절. 책가방 메고 현관만 나서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한 번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 두세 번 반복하기도 한다. 겨우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려는데, 나의 예민한 장 때문에 엄마는 매일 아침 애가 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증상은 계속되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유당불내증 때문임을 알았다. 키가 좀 작은 편이라, 키 크라고 매일 아침 식전에 한 팩씩 먹은 차가운 우유가 원인이었다. 지금도 아침에 우유를 마시면 오전 내내 화장실 신세다.


우유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장이 예민해 여행 가서도 항상 불안했다. 

30대 때 배낭여행을 떠났다. 외국은 우리처럼 도심에 마트가 없고, 빌딩 화장실을 개방해 놓지 않는다. 심지어 유명 관광지 맥도널드는 화장실에 자물쇠를 채워둔다.  

여행 중 뉴욕 도심 한가운데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이 눈에 띌 리 없다. 바로 앞의 트럼프 타워로 뛰어들어갔다. TV에도 자주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가 세운 바로 그 트럼프 타워. 모자란 영어로 경비원에게 화장실을 물렀다. 다급한 표정으로 플리즈를 외치는 동양의 남자에게 경비원은 따라오란 손짓을 했다. 얼핏 보면 벽으로 보이는 문을 열쇠로 열어 주었다. 직원용인데 볼일을 보고 가라고 했다. 


아침을 굶으면 오전 내내 힘이 없다. 빵은 속이 갑갑해 힘들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서 내 아침까지 한식으로 제대로 챙겨달라니 아내에게 미안했다. 

간편한 아침식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잼과 식빵, 계란과 치즈를 올린 토스트, 소시지, 시리얼, 모닝빵, 해동한 떡. 

"나도 아무거나 먹고 싶지만, 장이 이렇게 반응하는 걸 어떡해?"


 연예프로그램에서 블렌더로 야채, 과일, 견과류, 닭가슴살을 갈아먹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블렌더는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처럼 등장했다. 가격도 믹서기의 몇 배였다. 

냉장고의 야채와 과일을 꺼내 핸드믹서기로 갈기 시작했다. 시도해 보고 괜찮으면 블랜더를 사자고. 핸드믹서기로도 마시기 좋도록 잘 갈렸다. 

아침에 곡기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고정관념은 깨끗이 사라졌다. 야채와 과일 주스는 먹을만했고, 배가 아프지 않았으며, 허기도 없었다. 

바나나 한쪽으로 단맛의 베이스를, 제철 과일로 영양분을. 봄이면 딸기, 여름엔 수박, 가을엔 사과, 겨울엔 귤. 냉장고에 남은 야채들로 나머지를 채운다. 

먹는 량을 가늠하고 싶어 가는 양만큼 야채와 과일을 접시에 담아 먹어봤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다 먹기 버거웠다. 갈아 마시니 먹어지는 거다. 


매일 아침 샤워 후 식탁에 놓인 주스는 하루를 열어주는 아내의 사랑이다.


- 다른 사이트에 올린 글을 조금 편집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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