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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May 31. 2023

에스프레소 대신 바닐라라테

에스프레소 시리즈

에스프레소는 20년보다 더 긴 시간,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매일의 한 장면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매회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OST, 태연의 들리나요처럼.

브런치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올렸다. 고만고만한 조회수 속에, 에스프레소를 소재로 올린 글이 세 번 연속 다음커뮤니티 메인 페이지에 뜨면서, 하루 방문자수가 천명이 넘기도 했다. 



가열하고, 내리고, 마시는 삼분은 매일의 행복이다.

행정실 한편에 놓인 노란 에스프레소 머신.

부르릉거리는 머신의 소음은 이른 아침, 빈 행정실 공간을 채운다.

아무도 보지 않아 혼자 멋있다 생각하며 쓰디쓴 원액에 취한다.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조금씩 게을러지고, 출근시간이 몇 분씩 늦어진다.

덕분에 회진시간에 임박해 병원에 도착한다. 

급히 두 샷을 내려 텀블러에 붓고, 뜨거운 물로 채운다.


점심에는 탕비실에 비치된 1회용 가루커피를 마신다.

편하고, 맛도 고소하니 나쁘지 않다.



평일 쉬는 날에는 아내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송정, 일광, 기장에 새로 생긴 카페 탐방을 한다.

풍경, 분위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값이 녹아들어 간 시내보다 비싼 커피 한잔.

메뉴에 에스프레소는 없다.

유난스러울까 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케이크를 먹으며 자리값을 뽑고 나가기에 에스프레소는 짧다.


최근에는 주로 카페라테, 카페모카. 바닐라라테를 주문한다.

한 번씩 접하는 바닐라라테의 잘짝찌근한 맛이 에스프레소를 생각의 구석으로 밀어낸다.


바닐라의 추억은 동그라미는 아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바닐라 웨하스, 바닐라 사탕.

레몬을 통째로 씹어먹어도 신맛을 잘 못 느끼는 대신, 단맛에 유난히 민감한 내게 바닐라는 금세 물리는 단맛이었다. 바닐라를 식전에 먹으면 밥맛이 떨어진다.


이런 바닐라가 매일의 행복을 담당하던 에스프레소의 자리에 슬쩍 들어왔다.

일탈처럼 만나는 바닐라라테의 고소하고 달콤한 단맛에 점차 매료된다.


스트레스 때문에 뇌가 당분을 갈망한다.

나이가 들수록 당의 저장능력은 떨어지고, 소모는 빨라진다. 

내 머릿속에는 커피의 분류에 속하지 않던 믹스커피도 가끔 마신다.


20년 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여유와 행복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똑같은 커피 한잔이 아니다.

게으름.

조금 일찍 일어나 가열하고, 내리고, 마시는 시간을 주자.

카페라테는 에스프레소를 대신해 일상의 한 장면을 차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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