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천국이라는데. 저도 한 번 다녀와봤습니다.
임신을 하고나서 산후조리원은 가장 기대되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왜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천국이라는데 도대체 어떨지 너무 기대됐다. 조리원은 내가 언제나 그렇게 하듯이 집 근처에 있는 곳 한 군데를 찍고 '느낌'이 좋아서 정했다. ( 이름만으로 일단 집 근처의 한 군데를 찍는다. 그리고 여러 후기와 사진들을 보며 '느낌'이 좋으면 첫 번째 곳으로 정한다. '느낌'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참고로 결혼식장도 이렇게 정했다.) 이 글은 산후조리원에 3주간 체류했던 정말 순수한 후기 그 자체이다.
내가 선택한 조리원은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곳인데, 주변에 백화점과 직장가가 있어 창문 바깥의 풍경이 제법 볼만했다. 화창한 하늘 아래 깔끔하게 계획적으로 세워진 건물들과 공원처럼 조성된 단정한 거리를 보며 얼른 나가서 걷고 싶어서 몸이 간질간질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산뜻한 바람이 불어왔고 이따금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는데 적당한 정도의 빈도였기에 활기가 돌았다. 조리원이 건물 숲 사이에 있어 어두워지면 낮만큼 풍경이 좋지는 않았는데, 바깥의 소리는 오히려 더 좋았다. 지하철 역 근처인만큼 밥집, 술집, 카페가 즐비하여 근처 직장가의 사람들이 노동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서 내는 소음이 킥이었달까. 지역 특성상 비교적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이 많은데, 나와 나잇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소리가 나를 기분좋은 향수에 젖게 했다. 아무 생각도 제약도 없이 밤을 넘어 새벽까지 웃고 마시며 낭만과 우정을 다지던 날들이 생각나서 즐거웠다. 그럴 수 없지만 나도 내려가 같이 한 잔 걸치고 싶었다.
조리원 내부는 내부대로 느낌이 좋았다. 복도나 카페테리아 등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배냇 저고리 같은 느낌이었다. 희고, 포근하고, 정감가는 느낌이랄까. 라이트그레이색 타일로 된 바닥에 양쪽으로는 바깥 풍경이 보이는 긴 복도의 한 쪽에는 여분의 아기 침대가 줄지어 서있었고, 흰색 천장에는 흰 색 레이스로 감싸진 작은 조명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조명들은 살짝 노란빛을 내었는데, 이 노란색 조명이 희멀건한 전체배경과 어우러지며 이곳이 가족들을 위한 포근한 공간임을 드러냈다. 카페테리아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마찬가지로 라이트그레이색 타일 위에 커다란 흰색 테이블, 흰색 의자들이 자리를 잡고 공간을 더 환하게 만들었으며 짙은 그레이색 벽이 흰색 가구로의 집중을 만들어냈다. 기다란 타원 모양의 흰색 테이블을 보며 나는 가져온 책들을 저녁마다 읽을 수 있겠다는 아주 희망찬 생각을 했었다.
조리원에 입소할 당시, 나는 아드레날린 폭발 상태여서 에너지가 넘쳤다. 범도 휴가를 낸 상태라 첫 일주일 내내 둘이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서 조리원의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밥이 잘 나오는 조리원이라 하루에 각각 세 번 씩 나오는 식사와 간식을 나눠먹었다. 모자동실 시간에는 서툰 손짓발짓으로 신생아 짹을 돌보며 사진을 수십장씩 찍었다. 낮에는 하루에 한 번 있는 수업을 매번 붙어서 들었고, 사람이 적을 때를 노려 여러 편의시설을 하나씩 이용해보며 대학교CC마냥 킥킥댔다. 저녁엔 TV를 틀어놓고 이를 배경음악 삼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가끔은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호캉스를 온 것처럼 즐겁게 놀았다.
신생아실에 입소한 짹이 옆의 신생아들과 나란히 누워 사회생활 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처음에 짹은 울음소리가 작은 편이었는데, 몸집이 커져서인지 아니면 옆 아기들의 울음에 묻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갈수록 울음소리가 우렁차졌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듯이 "흥-애! 흥-애!"하고 울 때도 있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하도 웃겨서 나의 새로운 주력 성대모사가 되었다. 신기한 것이, 다 똑같은 아기 울음소리 같지만 귀에 익으니 내 아기가 우는 건지 확실히 구분히 갔다. 마사지를 받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아기들이 동시에 우는 소리 중 짹의 더블링이 느껴졌다. 신생아실로 다가가니, 아니나다를까 관리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빨간 얼굴의 짹이 울고 있었다. 작고 빨간 얼굴의 신생아들이 짧은 팔다리를 아둥바둥거리며 악을 쓰는 모습은 정말 귀여운 지옥이었다. (신생아들이 생각보다 데시벨이 크다.)
뭘해도 즐거웠던 일주일이 지나가고 범은 출근했다. 조리원에서 출퇴근 할 때도 있었지만 빈 집을 돌보기도 해야하고 여러 일로 바빴기에 첫 주 만큼 불어있을 수 없어 나머지 2주는 주로 홀로 생활했다. 첫 주에 뿜어져나왔던 아드레날린이 다한 것인지, 밀린 피로가 몰려왔다. 안 아팠던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좌욕을 하던 도중 계란만한 핏덩어리 두 개가 나와서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갔던 날도 있었다. 손목발목도 회음부도 허리도 어깨도 젖몸살도 다 아팠던 까닭에 마사지, 수업 듣는 시간, 모자동실 시간을 빼고는 전부 잠을 잤는데, 이 스케줄이 은근히 바빠 자도자도 피곤해서 식사량이 확 줄어들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읽으려고 잔뜩 사온 책들은 퇴소하는 날까지 10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다시 캐리어 안에 고이 들어갔다. 핸드폰을 손에 달고 사는 내가 친구들에게 카톡 답장은 커녕 톡을 읽지조차 못했다. 그 정도로 피곤하고 아팠다. 출산은 그런거였다.
아프고 피곤했기에 뒤의 2주는 휘리릭 지나갔다. 2주동안 매일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며 자투리 시간에는 무조건 자며 고3아닌 고3으로 살았다. 컨디션이 확 가라앉아 있는 와중에도, 새벽에 젖몸살을 앓으며 간신히 유축해냈을 때도, 실핏줄이 터져 빨간 거울 속의 눈을 마주할 때도 내가 무사히 출산을 해냈고 내 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짹이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보낸 하루도 있었다. 이따금 덮쳐 오는 우울감과 불안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염려가 담긴 메시지를 읽으며 또 어떤 날은 사랑이 담긴 복숭아를 먹으며 잠시 잊으면서 대체적으로 잘 지냈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이 천국이었나, 하면 확실히 첫 주는 그랬다. 아드레날린이 몸의 고통을 잊게 해줬을 때는 종일 에어컨이 틀어진 시원한 조리원에서 하루 한 번 마사지를 받으며 매 끼니 오첩반상이 방으로 배달되는 천국 중의 천국이었다. 그때는 운동기구가 없는 걸 아쉬워 할 정도로(!) 기운이 좋았고 오색찬란한 밝은 미래만 그려졌다. 그러나 출산 후유증이 덮친 2주 동안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비싼 돈 주고 신청한 마사지도 받으러 가기 힘들었고 수업도 간신히 참석했다. 우울할수록 더 움직이고 책을 읽어야하는데, 움직이기는 커녕 몸이 아프고 피곤하여 책 한 쪽 읽을 여력이 없었다. 짹이 신생아실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지 않았다면 불안정한 관절과 멘탈로 짹을 풀타임으로 돌보며 회복 기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겪어본 바로 내게 맞는 산후조리 방법을 택하는 것의 핵심은, '내가 몸과 마음이 상하여 회복 말고 다른 것을 신경쓸 수 없을 때'임을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혀 신경쓰지 못하는 시간에 신생아를 맡기기에 산후조리원의 정형화되고 공개적인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산후관리사분들이 아이를 좋아하는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분들이지만, 아무래도 갓난아이를 남에 손에 맡기는 마음이 편치는 않지 않은가. 통창으로 되어있는 신생아실을 보며, 내가 지쳐서 자고 있을 때 복도를 지나가던 옆 방 산모가 신생아실을 봐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또 그녀가 힘들어할 때는 내가 신생아실을 봐주겠다는 다짐에서 산후조리원은 신뢰인 것이다. 또한, 집이었다면 배출되는 오로 때문에 이부자리도 옷도 직접 세탁했어야 할텐데 조리원에서는 매일매일 남이 세탁해주는 옷과 이부자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이든 산후도우미든 자가에서든 어디서든, 모든 산모들이 자신에게 최고인 방식으로 주체적으로 산후 관리를 하기를 바라며 이상 3주 간의 산후조리원 체류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