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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적인 모먼트

다들 책에 나오는 음식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잖아요?

by 체리마루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미식가적인 면모를 띄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뭐든 안 가리고 다 잘 먹지만 맛있는 게 뭔지 잘 알고, 아무리 후미진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을 데려가서 실패한 역사가 없으며 친구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전파하면 곧 그 음식이 유행하는 얼리어답터이다. 맛있는 음식점도 기가 막히게 잘 고르는데, 얼마 전에는 'JMT존맛탱 마라샹궈 배달시키는 법*'을 전파하여 친구 평단의 호응을 받았다.

*우선 배달 어플을 킨다. 검색하면 마라샹궈가 나오지 않는 '마라썅꿔', '마라향거', '마라썅거' 등으로 검색한다. 배달로는 마라샹궈를 팔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집들은 높은 확률로 중국인들이 하는 맛집이다. 이미 매장에 손님이 많으니 배달이 그렇게 아쉽지 않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집들은 재료를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고르거나 추가할 수 없게 되어있고 오직 마라썅꿔(단품)으로 판다. 재료도 간도 내가 알아서 기막히게 맞춰놨으니 주는 대로 먹으라는 뜻인데, 먹어보면 정말 맛있다. 이 방법으로 처음 가는 지역마다 존맛 마라샹궈 집을 찾아 호응을 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이 방법은 먹히지 않게 되었다. AI의 발달로 인해, 이전에는 마라썅꿔라고 치면 나오지 않았던 마라샹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 앞에서 꿀팁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하자 나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고 찾아냈다. 배달 어플을 켜고 검색어에 어향가지, 어향동고, 어향육슬 같은 아주 중국적인 메뉴를 검색한다. 여기에서 뜨는 집들의 마라샹궈를 시켜 먹는다. 높은 확률로 마라향궈(단품)로 팔리고 있고 역시나 존맛탱이다. 이렇게 내 꿀팁은 A/S까지 확실하다.

미식가적인 면모가 있는 나는 여행을 가면 되도록 로컬적인 요리를 먹으려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끼러 그 지역에 간 만큼, 그 지역을 담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내게는 여행의 중요한 묘미다. 제주도를 가면 몸국, 접짝뼈국, 고사리해장국, 말고기, 보리로 만든 디저트가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시키고, 몽골을 가면 양고기로 만든 수프인 골리야쉬, 허르헉, 호쇼르를 아주 맛나게 먹으며 태국에 가면 망고밥, 랭쌥, 아이콘시암 쑥시암에서 파는 특이한 과일, 꽃 모양의 떡, 꼬치 등을 사서 먹어야 마음이 좀 충만해진달까? 가끔 패키지로 여행을 가면, 일행들은 도저히 입맛에 안 맞아서 못 먹겠다며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에 김치로 힘겹게 재미없는 끼니를 때울 때 나는 로컬 음식을 즐기며 다양한 세계의 맛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것은 큰 장점이며 내 혀의 미뢰는 여행의 중요한 수용기로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 보다 더 많은 부분을 즐긴다.


이렇듯 미각은 내게 큰 재미를 안겨주는 요소인데, 실제 음식이 아닌 애니메이션이나 책에서 나오는 음식을 봐도 그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지, 인스타그램에는 '먹고 싶은 애니메이션 음식 30선' 등의 게시물이 많은 좋아요 수를 기록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어렸을 적에 책을 읽고 유독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 적이 2번 있었다.

첫 번째 음식은 미취학 아동일 때 좋아하게 된 양파다. 엄마가 사 주신 어린이 탈무드 책에 양파 요리를 좋아해서 그것만 먹는 랍비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 주제는 검소한 생활습관을 가져라였던 걸로 흐릿하게 기억한다.) 어린이 책이다 보니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양파 요리가 도무지 양파를 어떻게 요리한 것인지 알 수 없게 찐빵처럼 그려져 있었다. 디즈니의 전형적인 무해한 할아버지 캐릭터 제페토처럼 생긴 랍비는 식탁에 앉아 포크로 그 찐빵을 찍어서 먹고 있었다. 대체 저 양파요리는 무슨 맛인 건지, 얼마나 맛있으면 그것만 먹는 건지. 나는 그림의 양파 요리에 홀렸고 양파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음식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좋아하게 된 우동이다. 우동은 원래도 맛있어서 8살 이전에도 좋아하긴 했었다만, 초등학생 필독서인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떠올리고 먹으면 평범한 우동이 산해진미로 변하곤 했다. 눈이 쌓인 겨울에 작고 따뜻한 우동가게로 들어서는 파리한 행색의 엄마와 어린 두 아들, 무심한 듯 면 1.5인분을 넣어 우동 한 그릇을 내어주는 주인장을 떠올리면 우동 면발 한 줄기 한 줄기가 그렇게 찰지고 국물이 진하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나의 이러한 '글 속의 미식'은 30대가 된 지금도 계속된다. 최근에는 공연이론예술가가 쓴 산문집에서, 그녀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같이 수업 듣는 사람 집에 놀러 가 흰 밥을 삶아 체에 걸러낸 후 짭짤한 망고잼을 올려 저녁으로 먹었다는 구절을 보았다. 삶은 밥 위에 짭짤한 망고잼이라니. 태국의 망고밥이랑은 전혀 다른 맛일 것 같았다. 밥에 코코넛 밀크를 끼얹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밥이 아니라 일종의 약밥, 설탕 과자 같은, 당연히 달달한 망고랑 잘 어울리는 망고밥의 스티키 라이스랑은 다르게, '삶은 흰 밥'은 죽이 되기 직전까지 삶은, 아무 간도 되지 않은 그냥 순수한 흰 밥 일 것 같다. '짭짤한 망고잼'은 망고를 잘라 뭉근하게 끓여내어 각종 양념과 소금, 설탕을 넣어 절인, 이름이 망고'잼'인거지 사실상 밥 반찬에 가까운 망고'절임'이었을 것 같다. 맛은 적당하게 짭짤하고 달큼한 맛도 섞여 있는, 일본의 나메타케(팽이버섯조림)랑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어떤 날은 외국 가수가 쓴 산문집에서, 돈이 없어서 공원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가게들에 이리저리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다가 빵 한쪽과 양상추 조금을 얻어 빵 위에 양상추를 얹어 먹었다는 부분을 읽었다. 햄, 치즈, 토마토, 홀그레인머스타드, 마요네즈 등등도 없이 빵 위에 양상추만 얹어 먹는 건 일상적인데도 신기한 조합이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30년을 넘게 살며 나름 이것저것 먹어본 덕분에 안 먹어본 것도 대충 무슨 맛인지 짐작이 간다는 거다.

그런데 전혀 짐작이 안 가는 글 속의 음식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만나'다. (나는 무교이며 절에 자주 가지만 종교랑 관련 없이 성경은 살면서 꼭 한 번은 읽어 봐야할 책이라 생각하여 읽었다.) 만나는 그 유명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이주할 때 40년간 광야에서 얻은 음식이다. 이 만나는 굶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이 내려준 것인데 매일 '광야 위에 가는 싸라기처럼 덮여있었다'고 한다. 이 만나는 ’고수풀 씨처럼 생겼고 빛깔은 브델리움'같았는데 백성들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모아다가 맷돌에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서 빵을 만들었고 그 맛은 '기름에 튀겨낸 과자맛'이며 또 단맛이 났다고 한다. 이 만나로 떡과 빵을 만들었다는데 대체 어떤 식감에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다. 성당에서 영성체 의식을 할 때 성체를 입으로 ‘모신다’는데 (일반인의 시각에서 먹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영성체는 지극히 종교적인 의식이니 천주교인들이 쓰는 표현으로 썼다.) 그것이 만나랑 비슷한 느낌일까? 내 미식은 일상에서, 여행에서, 글 속에서도 계속되기에 살아있는 한 먹고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신화적 음식인 만나의 맛도 나만의 확신을 가지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맛이 궁금한 ‘글 속의 미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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