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솔직함의 부재-
대학교를 다니면서 출판을 했다.
자가출판을 통해 책을 냈고, 잠깐의 관심을 받아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아주 아주 잠깐 오르기도 하면서 나름의 수익도 거뒀다. 브런치스토리에 간간히 나의 글을 전시하며 창작의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감정을 최대한으로 응축하고 절제하여 쓰는 ‘시’라는 매개를 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는 해석의 여지와 작가의 의도가 공존하는 매개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의도’라는 훌륭한 방어기제 속에 나의 솔직함들을 모조리 가둬 두었다. 그리고 ‘문학적’이라는 말로 어줍짢게 내 작품들을 치장하곤 했다.
이 때문에 나의 글은 어려웠고, 어렵다.
주위의 사람들도 나의 글이 어렵다고 했다. 때로는 본인이 그 글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해석의 곡해는 여전히 견고히도 존재했다. 누군가를 시상으로 썼던 글조차 그이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문학은 무슨 소용이 있나. 문학을 좋아하고, 창작을 즐기는 것은 예쁘게 표현하지 못했던 작은 마음들을 스스럼 없이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들을 통해 그 순간의 노이즈를 기록하고, 그 마음들을 아득히 먼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어렵게 꼬아댄 문학보다는 솔직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여느 중학교 수련회의 저녁 7시, 촛불을 켜두고 삶을 고찰하며 촛불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숭고한 시간들처럼 말이다.
내 글이 어려웠던 이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마저도, 시의 형식을 빌려 꽁꽁 숨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앞에서의 나는 아득히 작아지고 잘 표현하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도 표현함에 있어 형상들을 빌리게 된다. 빌려온 형상들은 글 안에서 싸늘히 말라 죽어 있다.
-노이즈캔슬링 없는 플랫폼 속에서의 작가의 꿈-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말라 죽어있는 나의 형상들에 수많은 나의 노이즈들을 얹고자 한다.
브런치스토리는 나의 멋진 고모부께서 알려주신 멋진 플랫폼이다. 솔직하게 내 노이즈들을 발산할 수 있었고, 나의 글들을 통해, 내 작품에 있어 점차 솔직해질 수 있었다. 주체없이 떠도는 글들보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가 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다. 독자의 입꼬리들을 쉴 새없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글들을 말이다. 브런치스토리는 시끄러우리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이다. 서로가 쓴 글들의 무해함과 멋들어짐 속에서 나는 한없이 솔직해진다. 이곳에서 나의 글들과, 나의 시집을 읽은 이들에게 더 멋지게 다가가고 싶다. 나의 고모부가 나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끝으로, 나의 시집을 읽은 이들에게-
정서의 공유, 영원히 기록해야 할 것들에 대한 물음.
나의 짤막한 문장들이 당신에게 무언가의 울림을 주었으면 한다. 확실한 것은, 나에게 확신없는 투자를 해준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다는 것이다. 몇몇은 나의 어떤 글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새롭게 영원히 기억할 노이즈를 발견했다. 여러분의 기록과 함께, 작가로서 풍성해지는 그날까지 자유롭게 창작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솔직함 속에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더 나아가고 싶다.
자유와 평화, 의미있는 죽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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