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Jan 14. 2018

홀로 삼킨 유난스러움에 대하여

6월의 금요일 : 무너지다



06.02.


이별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다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선 그 모습은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울거나 울지 않거나. 아무렇지 않게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말에 눈물을 삼키고, 애써 그 옆에서 밥을 먹으며 나 홀로 마지막을 챙겼다. 그녀와 그는, 그리고 나는 원래 이랬으니까.




06.09.


쓰러지다. 주저앉다. 무너져 내리다.

마음이 이딴 동사를 품고 있다. 부정하고 싶다. 머릿속에는 동사가 실행된 미래의 장면이 떠돈다. 또 다른 마음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 미래의 장면을 보고 있다. 두려우면서도 갈망하게 된다. 차라리 그러고 말까 싶다. 그러나 마음이 어떤지와 별개로 현실의 일상성은 여전하다. 회사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언젠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외롭던 그 시절, 따스한 햇살과 큰 나무를 벗 삼아 긴 시간을 무던히 보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기 따스한 햇살이 있고, 큰 나무도 있으니 지금 이 시간도 괜찮지 않을까 홀로 다독여 본다.


잠시 외면이라고 생각하니
너의 불면증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런 너의 불안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이랑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기 아무도 안 오고
너만 왔으면 좋겠다

- 김승일, '1월의 책' 中




06.16.


회사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지각을 자처하며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 날이 좋아 울지도 못할 날씨라며 한탄을 하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햇살이라니 다행이지 않냐며 홀로 마음을 달랬다. 마음을 좀처럼 붙잡지 못한 상태이더라도 정해진 스케줄대로 해야 하는 일은 해내야만 했다. 나를 향한 관심 혹은 걱정의 시선에 고마움을 전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미안함도 늘고 외로움도 늘었다. 감정에 취해 있는 나의 아우라를 느낀 사람 중 한 명은 날 다정히 다독여주었지만, 그래서 고마웠지만 더욱 외로웠다.

- 마냥,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中


언제가 그랬듯이 그는 날 다정히 다독여주었지만, 결국 그가 떠난 빈자리만이 내게 남았다.


사람의 몸과 몸 사이의 거리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좋겠다. 어떤 소통의 통로들이 결코 거세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들킨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불편함들을. 뜨거운, 그리고 차가운 소금 한 움큼을 켜켜이 입에다 들이붙고선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다. 다가 오지 마세요, 나에게.

나는 결코 말랑해질 수 없어요.

- 요술램프 예미, '나는 부서졌다' 中




06.23.


새벽에 배가 아팠다. 엄마 곁을 찾아 옆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엔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국에 들어가서 처방전을 내미니, 이를 보신 약국 아주머니는 '꽃띠네!'라고 하신다.


나 : 꽃띠요?
A : 응, 28살 꽃띠네. 28살이 제일 예쁠 때인데,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약 잘 챙겨 먹고 얼른 나으라는 아주머니 말을 뒤로한 채 약국 문을 나섰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걸어가는데, 울컥했다. 사실 난 꽃띠로 사는 요즘이 왜 매일이 처음처럼 더욱 어려운 거냐고 되묻고 싶었다.




06.30.


나는 혼자였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절망적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분명 후안무치한 향락자였을 텐데, 그 누구도 나만큼 쉽게 상처받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나만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마음을 다한 이가 마음을 돌렸다. 그의 마음은 어렸던지라, 속내가 쉬이 보였다. 실망이 컸다. 동시에 내가 조금 더 마음을 더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뒷모습만 보이는 그를 몰래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더해갔다. 여러 번 조금씩 나눠서 울었다. 남은 시간 상처 주지도 말고 상처받지도 말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를 볼 때마다 상처가 생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더 아팠다.


남 보기에도 스스로 보기에도 유난스러웠던 날들이었다.


누구도 상처를 통해 강해지지 않는다. 상처를 통해 강해지라고 하는 말은 대부분 그 상처에 무뎌지라는 뜻이다. 무뎌진 사람들은 상처받는 환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무뎌지는 것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 서늘한여름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中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리나 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