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수요일 : 울다
밤이 오자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몇 개의 문장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머리로는 백 번이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도 남을 일이 마음에서는 답을 향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울음이 터질 듯 터지지 않았다.
우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당신과 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 출근길, 보통은 노약자석 앞에 기대어 서 있곤 한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사람들이 가득한 중간쯤에 서있었다. 곧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방울이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내리자, 나는 그 여자 앞에 더욱 바짝 다가섰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아파하는 이를 슬쩍 쳐다보기만 하는 게 미안했고, 피하고 싶을 타인의 시선을 가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울던 여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렸다.
나는 그 여자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홀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썼고, 전화를 붙잡고 지치고 힘들다는 투정을 하던 밤에, 차라리 속 시원하게 한 번 울고 말자는 바람이 이뤄지지 않던 그 밤의 바람이 당장이라도 이뤄질 것 같았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날이 좋았다. 울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다.
- 3월 15일 출근길
회사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지각을 자처하며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 날이 좋아 울지도 못할 날씨라며 한탄을 하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햇살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않냐며 홀로 마음을 달랬다. 마음을 좀처럼 붙잡지 못한 상태이더라도 정해진 스케줄대로 해야 하는 일은 해내야만 했다. 나를 향한 관심 혹은 걱정의 시선에 고마움을 전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미안함도 늘고 외로움도 늘었다. 감정에 취해 있는 나의 aura를 느낀 사람 중 한 명은 날 다정히 다독여주었지만, 그래서 고마웠지만 더욱 외로웠다.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서글픈 소리가 나지.
- 나쯔메 소오세끼, '이 몸은 고양이야' 中
울음을 어디에 담아 둘까. 얼마나 담아 둘 수 있을까.
많은 희망이 사라졌고, 많은 꿈이 패배를 맛보았으며, 많은 친구가 배신을 했다. 확실한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 로맹 가리, '마지막 숨결'
그럼에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리석다고, 미련하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中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돈다.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난해한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답을 바꾼다. 멍하니 건물 사이를 내다보다, 왜 나의 빈자리를 타인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인지,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이렇게 그를 원망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떠올렸다. 견뎌내야만 하는 타인과의 관계로 지쳐 나를 포함한 세상이 한 번에 모두 사라져 버리길 바라다가도, 이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근처에 자리해주길 바라곤 한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